19세기 일본의 산업화, 근대화 과정은 구미의 열강들의 산업화 과정과 비교할 때 매우 특이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빠르게 산업화, 근대화에 성공했으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제압함으로써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

어떻게 일본은 단시간내에 산업화, 근대화를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크게 네 가지 요인, 시대적, 지정학적, 사회적, 정책적 요인으로 구분해 살펴보자.





1. 시대적 요인




1839년 영국과 청나라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아시아 전반의 국가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일본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힘과 문명의 질서가 중국 대륙에서 구미 대륙으로 전환되는 광경을 본

일본은 자신들도 언제 다른 열강들에 의해 침략을 받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의 근대화의 도화선에 불씨를 지핀 사건이 터졌다.

1853년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동인도 함대가 일본 나가사키 항에 도착하였고

페리 제독은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일본 정부의 개항을 요구한다.

 일본은 이 사건으로부터 일본과 구미 열강과의 기술적 차이를 깨달았고 일본도

이에 발 맞추지 않으면 독립국가는 커녕 열강의 식민지가 될 위기에 처함을 직감했다.

이에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당시 봉건제도 성격의 후진적인 막번 체제를 뒤집고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국가의 역량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적 체제로써 탈바꿈한다.








이로써 일본은 아시아 최초의, 구미 열강의 후발주자로써 산업화에 착수하게 된다.

비록 일본은 열강과 대략 반세기 이상 격차가 나는 산업화 후발주자였지만 19세기 중엽의 시기는 

산업화의 첫 발을 내딛기에는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유럽 국가의 경우 기술적 발전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이전의 것들은 폐기되어야 했지만

일본은 그 당시 어느정도 체계가 잡히고 정리된 기술을 받아들여 곧바로 적용시킬 수 있었다.

예로, 가스등에서 전기등으로 전환, 증기 에너지에서 전기 에너지로의 동력의 전환은

이미 많은 돈을 들인 기존의 것을 새로운 것으로 완전히 대체하는데 큰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일본은 이러한 시간과 비용을 치루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2. 지정학적 요인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는 또한 지정학적 요인도 매우 컸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동북아시아 말단의, 그것도 섬나라라는 독특한 지정학적 환경은

외세의 침략을 배제시킴으로써 오로지 일본은 근대화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섬나라인데다 거리상으로도 엄청나게 먼 일본을

굳이 큰 희생을 치루어 점령할 이유는 없었다.

당시 유럽 열강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아프리카 및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 건설에 바빴고

미국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라 일본을 상대할만한 여력도 없었다.

한국 또한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경제발전에 올인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3. 사회적 요인




에도시대 일본은 근 200년간 전쟁이 없어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군의 대량의 인원이 군사활동에서 행정활동으로 옮겨가게 되었음은 물론

농업기술의 발달과 일본 전국 각지에서 토지개간 활동이 일어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충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1731년 에도(현재 도쿄)에는

인구가 100만에 육박했는데 당시 전세계에서 인구가 100만이었던 도시는 에도 뿐이었다.

게다가 거리 곳곳에는 서점이 즐비했는데 이는 일본의 출판 시장이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책을 통해 빠른 정보 습득이 가능했고 일본인 대부분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기존 출판시장의 흥행 덕분에 서구의 기술 문명은 일본 사회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책이란 것은 매우 귀했고 서점은 단 한 군데도 없으며 지식은 양반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다.





4. 정책적 요인




우리나라 또한 박정희 정부의 정책적 주도하에 단시간에 근대화를 이루어 낸 것과 같이 일본 또한 그러했다.

페리 제독의 무력 시위를 통한 강제 개항의 수모를 겪은 일본은 이후 유럽과 미국에 사신을 파견하고 

뛰어난 인재를 보내어 그 기술을 배우게 했다. 메이지 유신이후 본격적으로 정부 주도하에 

근대화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 시기 일본 제국대학이 탄생하게 된다.

이미 출판시장이 활성화되었기에 시민들의 문명개화 작업은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에 진입하자 서양의 문명에 쫒아가기만 하던 일본은 점차 독자적인 기술을 만들어 낼 정도가 되었다.

에도시대부터 이미 충분한 재정이 확보되었기에 일본 정부는 사회 전반의 기반시설을 만들었고

정부가 소유한 공기업을 어느정도 키운 다음 민간에게 넘겨주는 형식으로 민간기업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민간기업 중 하나가 바로 일본 내 최고의 기업인 미쓰비시 그룹의 시작이다.

일본은 당시 서양에 비해 자신들은 열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자신들을 개화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 열등감은 주변 아시아 국가들을 개화대상으로 보게끔 하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중국과 조선은 개화될 조짐이 없었기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근대화 동맹을 맺을 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했고

 일본 또한 열강들에 맞서기 위해 다른 열강과 마찬가지로 팽창주의를 택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기업은 군비를 늘려 군사력을 확장시키는데 집중하고 후일 러일전쟁에 승리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과 같은 열강의 반열에 자리하게 된다.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9 23:55

세상사 빠른 변모의 과정 속에서도

게이샤는 현대까지 약 400년의 긴 세월 동안 존속해왔어

실제로 한국 내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중에서

' 운이 좋으면 교토에서 게이샤를 만날 수 있다 ' 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지

사실 사회에 게이샤의 삶이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어

오늘날에야 여러 매체와 관심을 가져준 몇몇 인물 덕분에 비교적 베일이 조금 벗겨진 것뿐인 셈이지

그렇다면 입을 굳게 다문 그녀들의 침묵 속엔 대체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던 걸까

한때는 쇼군의 노리개로

또 한때는 사무라이들의 애첩으로

비밀과 관능의 세계에 은둔하며

일본 역사상 가장 격변의 세월을 함께한 그녀들

'게이샤(Geisha)'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발달된 국가 중 하나인 일본과 더불어 기술력을 신봉하는 일본인들

앞서 언급했듯 그들은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급속한 변화를 겪어야만 했어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긴 시간 동안 변치않는 전통이 남아있는데 바로 '게이샤'야

그녀들을 달리 표현하자면

가녀린 관습의 수호신이자 현대를 사는 고귀한 과거라고도 할 수 있지




 

게이샤들의 세계는 일반인들로부터 철저히 폐쇄되어 있으며

나아가 생활 역시 비밀과 관례에 물들어 있어

또한 그녀들은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집에 살지만

어두운 뒷골목과 밀폐된 찻집에서 생계를 꾸려가야만 해

미국 작가 아서 골든(Arthur Golden)는 바로 이 신비스러운 전통적 존재에 매료되었어

그리고 그는 10년간에 걸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게이샤의 추억(Memoir of a geisha)'을 집필해냈지




 

"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세계라는 점이 오히려 저를 매료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걸 좋아하지 않죠. "

책을 집필하기 위해 아서는 게이샤 세계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져 왔던 침묵의 맹세를 깨뜨려야만 했대

아서의 말에 따르면 그가 처음 이를 시도했을 땐

정말이지 비밀 종교집단에 침투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고 해

뭐 과장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만큼 게이샤의 삶이 어두운 곳에서 비밀리에 부쳐졌던 뜻이었을 테지




 

" 제가 만일 예전에 게이샤에 관한 질문을 받았더라면 다른 미국인들과 대답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게이샤와 창녀가 동의어가 아니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 당시엔 게이샤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진 못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젠 일본 사회에서 게이샤의 존재가 매우 특별하단 걸 알아요. "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게이샤

그녀들의 세계는 가히 우아함과 세련미가 전부이며 사랑은 한낱 냉소의 대상에 불과해

예로부터 게이샤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오로지 남성을 매혹시킬 수 있는 '외모' 뿐이었거든

덕분에 그녀들은 과거부터 선택된 소수 특권층의 지위와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의 경이롭고 신비스런 상징적 도구로서 존재해왔어




 

일반인이 게이샤와 마주친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야

하지만 일본의 옛 수도 교토(Kyoto)에서는 매년 게이샤들이 참석하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맘때쯤이면 비교적 쉽게 게이샤를 볼 수 있지

이 벚꽃축제는 일반 시민들이 가장 쉽게 일본의 전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인정받고 있어

이 축제는 흔히 '미야코 오도리(Miyako odori)'라고 불리는데

역사와 관능을 한몸에 표현하듯 화려한 기모노로 치장한 많은 게이샤들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 미모와 재능을 뽐내곤 해




이렇게 얼굴에 분칠을 하고 항상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는 게이샤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녀들도 각자 속에 힘들고 복잡한 개인사를 감추고 있기 마련이야

다만 게이샤들은 자신들의 비밀에 대해 전적인 침묵으로 일관하며

더불어 오랫동안 일본 최고 권력자들이 벌였던 음모와 배반, 권모술수를 직접 눈으로 목격해왔지

" 게이샤는 남성들의 모임에 동석하기 위해 하룻저녁 동안 고용되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었는데요.

놀랍게도 창녀와 달리 별도의 잠자리는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

서양처럼 사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일본의 특징 탓에 그녀들은 주로 대화의 매개체 역할을 한 것입니다. "



 

게이샤의 주된 임무는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서 고객들의 비밀스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이를 함구하며 절대 발설하지 않는 것이었어

비밀을 보장해주는 것뿐이라면 너무 간단해보일수있지만

엄청난 대화가 오가는 자리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때문에 분명 침묵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며

이는 현대까지 게이샤들이 존속해 올 수 있었던 일종의 비결로도 볼 수 있어




 

게이샤는 남성을 위해 전적으로 여성에 의해 운영되는 산업이기에 이들의 우두머리도 역시 여자인데

그녀들은 대모, 즉 오카미(女?) 상으로 불리며

게이샤들에게 숙식과 값비싼 기모노를 지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그 대가로 게이샤들은 고객들에게서 받은 돈에서 약간의 수고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입을 대모에게 준다




 

여느 유흥 업계의 과거사가 그러하듯

게이샤의 대모 역시 마치 포주처럼 게이샤들을 말그대로 소유하며

끝없는 채무로 자신에게 종속시켰던 시절이 있었어

당시의 대모들은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게이샤의 처녀성을 팜으로써

그녀들에게 투자한 돈을 회수하곤 했지

때문에 대모들에게 있어 이러한 조심스러운 거래를 위한 광범위한 인맥은

역시 사업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였어



 

작가 아서 골든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어

" 게이샤 하우스를 운영하는 대모에게 돈만 아는 악녀, 혹은 포주의 이미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런 인물이 많았기에 좋지 않은 꼬리표가 붙은 것이기도 하죠. "

하지만 오늘날에는 게이샤들에게 보다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대모에게도 이로운데

게이샤 하나를 키워내는데 무려 6억 원이란 거금이 소요되기 때문이야

실제로 악조건 속에서 미처 교육 과정을 버티지 못한 게이샤가

도중에 그만두기라도 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일반적으로 견습 게이샤들의 훈련 기간은 5년 정도라고 해

그럼 이쯤에서 약 3년의 훈련을 마친 견습 게이샤

요이코(Yoiko)의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고 가자

게이샤가 된 순간부터 그녀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선배 게이샤인 마메카(Mameka)를 잘 따르는 거였어

모든 견습 게이샤들에겐 각각 선배가 붙는데

그로부터 여러 세기 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통과 기술을 직접 전수받기 때문이지



 

선배 게이샤인 마메카의 삶은 슈퍼 모델과 다를 바 없는데

그녀는 12억 원이나 하는 컨트리클럽 멤버십과 개인 골프 레슨 등

생활의 모든 면에서 최고의 것들만을 보장받고 있거든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요이코에게 있어 성공한 게이샤인 선배 마메카는 선망의 대상인 셈이야

"게이샤가 된 덕분에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고 일반인들은 갈 수 없는 곳에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실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죠. "




 

사실 게이샤란 말은 원래 예술가를 의미해

모름지기 게이샤라면 대화 능력과 더불어 춤과 음악, 문학에 능통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거든

그 중에서도 게이샤가 추는 춤에는 예술을 위해 사랑을 희생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는 어찌보면 게이샤에게 엄청난 열정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지



 

실제로 이들의 훈련은 끊임없이 계속되는데

40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조차도 떠오르는 신인 게이샤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을 춤 연습에 열중한다고 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게이샤는 절대 결혼하지 않아

대신 함께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이들의 동료애는 평생을 두고 지속되지

이러한 게이샤들의 폐쇄적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성공한 단 한 명의 외부인이 있다면 바로 최초의 서양인 게이샤 '라이자 달비(Liza Dalby)'야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그녀가 처음 게이샤가 되었을 무렵

푸른 눈의 여성이 샤미센(Shamisen : 일본 현악기)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는 건

일본인들에게 있어 게이샤 역사상으로 유례없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였기에 이는 꽤나 이슈가 되었어

라이자의 게이샤 대모는 과거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지

" 물론 처음에야 서투른 것이 눈에 치일 정도였지만 라이자는 기모노를 입은 채 걷거나 무릎을 꿇고 앉는 데 곧잘 적응해나갔어요. "




그런데 애초에 그녀는 게이샤가 되기에 부족할 것 없는 배경을 갖추고 있었어

10대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라이자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소화한 것은 물론이며 게이샤들의 악기인 샤미센을 다룰 줄 알았고

사상 최초로 게이샤 관련 논문을 발표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지

물론 라이자가 직접 게이샤가 된 것은 단순히 게이샤에 대한 그녀의 열정 덕분일 테지만 말이야



 

" 게이샤들 중에서 제가 특별히 눈에 띄거나 하진 않았어요.

다만 연회에 동석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고객들이 절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잠깐! 일본인이 아니잖아! 어떻게 된 거지?' 하며 놀라곤 했죠.

다른 게이샤들은 그게 재미있었는지

그 이후 외국인 게이샤가 있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고 가만히 앉아 그 순간을 기다리곤 했어요.

서양의 옷을 입었을 때와 기모노를 입었을 때의 걷는 느낌은 정말 너무나도 달랐어요.

기모노는 다리를 바짝 죄기 때문에 잔걸음으로 걸어야 했기 때문이죠.

저는 그게 익숙하지 않았던 탓인지 곧잘 넘어지곤 했고 선배에게 혼나기 일쑤였어요.

사실 기모노를 입고 움직이는 건 저에게 새로운 신체언어를 배우는 것과 다를 바 없었죠. "



 

" 게이샤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여성은 평생 독신의 길을 선택하는 겁니다.

평범한 주부와 독신의 갈림길에서 중대한 선택을 하는 것이죠.

게이샤는 평범한 중산층이 아닌 예술인의 길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




 

게이샤의 이미지는 늘 매춘부와 혼동되어 왔어

그녀들은 창녀와 달리 직접적으로 성매매를 수단으로 하여 돈을 벌진 않았지만

실상 스스로 고객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점은 창녀와 똑같았기 때문이지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게이샤가 예술작품 자체로써 비록 숭고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더라도

밤엔 돈으로 임대되어 남성 고객들의 즐거움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거든



그렇다면 먼 옛날

천민에 그 뿌리를 두고도 긴 세월 동안 점진적인 신분 상승을 통해 결국 일본 사회 최상류층에 합류하게 된 그녀들이 400년 가까운 일본 격동의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였을까

독특한 게이샤 문화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일본의 과거를 알아야 해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세기 전인

에도 막부(Tokugwa Shogunate) 시대에서 시작되니까




 

게이샤가 처음 등장한 건 1600년대의 일이야

당시 일본은 여러 세기에 걸친 전국시대 끝에 오늘날 도쿄라 불리는 에도(Edo)의 쇼군 통치 하 강력한 집권 체제가 자리잡았지 그리고 그 이후 일본은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수백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말이야

쇼군의 권력이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어

그로 말미암아 매우 억압적이었던 쇼군 정권은 결국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따라잡지 못하고서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윤락행위 역시 국가의 통제 하에 두면서 허가된 지역에서만 가능하도록 했지




 

때문에 공인된 소수의 유곽은 도시 내 남성들의 성적 해방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수 있었어

매춘부나 고급 창녀들은 유곽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연회 속에서 사무라이와 상인들을 즐겁게 해주었지

그렇게 최초의 게이샤는 바로 이 유곽에서 탄생했어

다만 최초의 게이샤는 여성이 아닌 남성들이었는데

그들은 궁정의 어릿광대와 같은 역할을 도맡았고

창녀들이 연회를 벌이면 그곳에 동석하여 음악과 춤을 공연하거나 농담을 들려주곤 했지




 

그러던 어느날

손님이 떨어진 매춘부 하나가 최초의 여성 게이샤로 나서게 되었는데

가히 그 인기가 폭발적이었던 탓에 오래 지나지 않아 여성 게이샤의 수는 남성 게이샤의 수를 앞질렀으며

나아가 일반 매춘부들의 고객들도 모두 빼앗아 올 수 있었어

물론 처음엔 게이샤와 매춘부들 간에 상당한 경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돼

당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매춘부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점차 늘어나는 게이샤의 활동을 규제하려 애썼지만 같은 여성으로써 매춘부의 영역이었던 성매매가 게이샤에게도 좋은 돈벌이가 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덕분에 매춘부들은 점차 게이샤들로부터 밀려나게 되었어




 

하지만 그로부터 1779년

게이샤는 마침내 정식 직업으로 인정되면서

'겐반(?番)'이라고 불리는 등록소로부터 관리되었으며

이때부터 게이샤는 겐반으로부터 매춘 행위를 강력히 규제받았어

그 이유인 즉 게이샤는 처음부터 매춘부들과 경쟁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었고

따라서 정부에서 엄격한 대응에 나선 것이었지



 

겐반에서는 연회에 참석하는 게이샤에게 사람을 붙여 처음부터 끝까지 호위함으로써

이들이 매춘의 길로 새나가는 것을 방지했어

이러한 규제 때문이었을까

초창기 게이샤는 굉장히 소박하기 그지없었고

한동안은 용모가 다소 떨어지는 여성들이 주로 게이샤가 되곤 했다고 해

그럼 용모라는 다소 주관적인 요소말곤 매춘부와 게이샤를 구분짓는 특징은 무엇일까??

그에 관해선 다시 한번 아서 골든의 설명을 빌려 살펴보도록 하자




 

" 서양인들이 갖고 있는 게이샤에 대한 이미지는 1800년대 일본의 매춘부와 많이 혼동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매춘부와 게이샤는 옷차림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죠.

우선 게이샤는 '오비(帶 : 허리에 매는 띠)'를 뒤로 맵니다.

연령에 따라 길고 짧은 차인 있지만 오비는 언제나 뒤로 매듭을 짓죠.

반면 매춘부는 오비를 앞으로 매게 되어 있어요.

그 이유는 간밤에 성관계를 위해 기모노를 벗었는데 아침에 다시 입으려 하면 전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그 스스로 오비를 매야하기 때문이죠.

또한 매춘부는 머리 장식이 요란한 편인데 게이샤의 머리 스타일은 그에 비하면 훨씬 단순합니다. "




겐반을 통한 당국의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게이샤 사업은 번창했고

남성들에게 있어 매춘부와 달리 오히려 단순한 게이샤의 옷차림은 더욱 인기를 끌었어

더불어 에도 지역에서 시작한 게이샤 업계는 그렇게 일본 열도 전역으로 차차 전파되기 시작했지

그 와중에도 시기가 시기인터라 당시 일본의 쇄국 정책은 계속되었는데

해외로 도피하다 붙잡힌 자들은 가차없이 참수되었고

물 건너 온 외국인들은 인간 이하로 취급되기 일쑤였다고 해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파견된 초대 미국 영사관은 '타운센드 해리스(Townsend Harris)'였어

그는 1856년 8월 시모다(Shimoda) 만에 도착했는데

고국으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일본과 협상을 통해 최초의 무역 협정을 맺는 것이었지

당시 일본은 앞서 언급했듯 세상과 격리된 채 250년쯤 뒤처진 사회였어

쇼군 정부는 문화, 무역, 그 외 어느 분야에서도 세계에 동화되려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운센드 해리스는 끝내 그걸 바꿔 놓고자 했고 말이야

그는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저항에 부딪쳐야 했지만

다행히 끈덕진 성정 덕분에 이를 포기하지 않았어




 

타운센드 해리스에 대해서는 게이샤에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이때 일어났던 사건이야

협상 중이던 해리스가 갑자기 일본 정부에 게이샤 한 명을 요구했던 거지

외국인과의 접촉이 굉장히 조심스러웠던 상황에서 사실 이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이었어

하지만 특유의 끈질김 탓에 끝내는 오키치(お吉)라는 어린 게이샤 하나가 그에게 보내졌지

오키치는 매우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나 촉망받던 게이샤였는데 평소 해리스가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음을 알아차린 일본인들은 오랜 설득을 통해 오키치를 보내며 내부의 정보원 노릇을 해주길 내심 바랐어



 

하지만 이러한 일본 당국의 의중은 곧 실패로 돌아갔어

오키치가 해리스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거지

그녀는 서양인과 사랑에 빠진 최초의 게이샤였던 셈이야

또한 그들의 유명한 사랑 이야기는 그로부터 한 세기 후인

" The Barbarian and the Geisha "란 작품명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어

5년에 걸친 긴 협상 끝에 마침내 무역 협정을 맺는데 성공한 해리스가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던 시간을 작중에선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오키치, 내가 원해서 떠나는 게 아니에요 "

" 미국이라니. 너무 먼 곳이예요.. "

" 당신을 잊을 만큼 먼 거리는 아니죠. "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은 그와 달리 낭만적이지 못했어

고국으로 돌아온 타운센드 해리스의 일기장에 오키치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걸로 봐서

그는 이미 오키치를 잊어버렸음이 분명했거든

버려진 오키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더러운 외국년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살아가야 했어

결국 그녀는 심한 스트레스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서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지

하지만 시모다의 게이샤들은 아직 그녀를 잊지 않고 있어

실제로 아직까지 많은 게이샤들이 해마다 오키치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장소를 찾아가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곤 한대




 

한편 해를 거듭해 250년에 걸친 억압적인 쇼군의 정책이 지속되자 사무라이들의 불만은

곧 정권 교체의 음모로까지 번지게 되었어

이때 그들의 비밀 회합장으로써 이용되었던 것이 게이샤의 찻집이었지

이처럼 적잖은 게이샤들의 도움으로부터 마침내 사무라이들은 쇼군의 통치에 막을 내리게 됨과 동시에

메이지 천황의 통치를 성공적으로 도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대정봉환(大政奉還)'이야

그리고 천황의 시대를 새롭게 여는데 일조한 게이샤들은

이로부터 비로소 일본 최고 권력집단의 비호를 받으며 최상류층에 속하게 되었지



그렇게 게이샤의 세력과 인기가 끝없이 치솟는 동안 일본은 현대 사회로 차츰 발돋움 해나갔어

서양의 기술 문명은 마침내 아시아 증기의 시대를 열었고

이 무렵쯤해서 남성들은 긴 머리를 짧게 자르며 중산모를 쓰기 시작했지

더불어 이와 같은 새로운 시대에서 게이샤는 마치 오늘날 영화배우처럼 유행의 첨단을 주도하는 계층이었어

때문인지 1900년도에 접어들자 게이샤의 수는 약 25000명으로 급격히 불어났는데

당시 그녀들은 일본 내 가장 멋진 여성들로서 모든 여자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해




 

그로부터 몇 년 뒤

야심만만했던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고

강국으로 인정받던 러시아로부터 발칸함대까지 대파하며 승리를 거두었어

그리고 러일 전쟁 종전 후 민감한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 장군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쿠로파킨(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Куропаткин)을 위해 벌어진 연회에 대해선 게이샤에 관련된 또다른 일화가 전해지지

연회에서 불려간 게이샤는 오코이(Okoi)라는 여자였는데

그녀의 춤을 감상하던 러시아 장군은 술김에 갑자기 오코이에게 두르고 있던 오비를 풀어달라 부탁했어

하지만 그녀는 이에 두말없이 딱! 잘라 거절했지

그 당찬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가쓰라 타로(桂 太?) 수상은

이후 오코이를 기꺼이 자신의 정부로 삼았다고 해




 

실로 일본 역사상 고위 권력자가 게이샤를 직접 아내로 들인 최초의 사건이었어

때문에 이것은 단순 일화라고 치부되기보다

당시의 게이샤들이 이를 계기로 그들 사회에서 최상류층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나름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지

1900년대 게이샤와 결혼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어

또다른 예로 바론 무츠(Baron Mutsu) 외무성 장관은 두 차례의 결혼 모두 게이샤와 했지

뭐 사실 남자로선 게이샤와 결혼하는 것이 딱히 나쁠 것 없었어 남자를 깍듯이 모실 줄 알았고

특유의 무거운 입 덕분에 어떠한 비밀이든 누설될 걱정없이 철저히 지켜졌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처럼 막강한 지위를 누렸던 게이샤들 역시

1920년대 현대 사회가 본격적으로 개막됨과 동시에 그 존속을 위협받기 시작했어

일본 내 재즈 시대(Jazz Age)가 도래하며 무수한 쇼걸들이 게이샤를 대신해 무대를 수놓았고

서양 문명에 목말라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이트클럽이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지




 

이제 일본 내 최고 멋쟁이들은 20년대 식 신식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었어

게이샤들에게 심각한 존폐 위기를 맞게 해 준 요소들 중

새롭게 등장한 바 호스트들은 사람들로부터 단연 인기만점이었는데

이들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남성과 동석해주었고 무엇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굉장히 현대적이었지

실로 1920년대는 게이샤들에게 있어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어

하지만 게이샤들은 생각보다 그리 당황하지 않았지

그녀들은 춤과 노래, 음악 등 그들만의 전통을 굳게 지키며 오히려 자신들을 차별화해 나갔거든

전과 달리 첨단 패션을 주도하던 것에서 벗어나 전통 예술의 수호자로 자청하고 나선 거야



게이샤의 수난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1926년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와 함께 일본은 군사 대국으로 성장했고

그에 따라 열도의 전 지역에선 국수주의 열풍이 몰아침과 동시에

서구의 문물을 부정한 것으로 취급하며 비난하기 시작했거든

덕분에 게이샤는 일본 전통문화의 일부로서 다시 한번 각광받을 수 있었어

그 결과 게이샤는 1930년대 초 그 수가 최대 약 80000여 명에 달했을 정도였으며

가히 전성기라 불릴 만한 시기를 맞이했어

게이샤가 밀집해 있던 기온(Gion)을 중심으로 일본의 옛 수도인 교토 역시 옛 영광을 되찾게 되었지



 

오늘날 교토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한번쯤 들르는 유명 관광지인 기온은

사실 일류 게이샤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야

실로 문화적 향취 가득한 교토에 비하면 도쿄는 급성장한 신도시에 불과했어

또한 1930년대는 일본 경제가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때라

게이샤들은 값비싼 기모노를 매달 한 벌씩 사 입었고
시기를 잘 타고난 갑부들은 그녀들을 열두 명씩 거느리고 꽃놀이를 다니는 게 다반사였지

당시의 돈 있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게이샤를 아낌없이 후원했던 거야




 

그러나 호시기를 누리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겐 여전히 어두운 단면이 존재했어

교토의 게이샤 수요가 급증하자 각 시골의 빈곤한 가정에서 기껏해야 여섯-일곱살 난 어린 딸들을

게이샤 하우스에 팔아넘기곤 했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기온의 게이샤가 되는 법은 아니었고

따라서 운이 정말 좋지 않은 다음에야 마치 가축인 양 팔려나간 이 소녀들이

장차 기온에서 게이샤로 자랄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어

그리고 설사 게이샤가 되었다 한들

당시 그녀들은 과거의 악독했던 대모들에게 종속된 소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그저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에서야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했지




 

우울하게도 오늘날과 달리 1930년대의 게이샤들은 스스로 그 직업을 선택한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어

더불어 수련기간 동안 게이샤 대모에게 받은 기모노와 숙식, 교육비 등의 빚을 떠안은 그녀들은

경제적 의미에서의 포로와 다름없었고 말이야

행여 도망친다 해도 결국엔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다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하니

도대체 감옥이랑 다를 게 뭐였을까

게다가 가장 비싼 값을 치르는 고객에게 게이샤의 처녀성을 파는 '미즈아게(水揚)'라는 관습도

사실 바로 이때 생겨났던 거야 대다수 어린 게이샤들이 이 충격적인 통과 의례를 치르기엔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 게이샤가 마치 전문 창녀처럼 성적인 것에 초점을 둔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기껏해야 그녀들이 첫날밤을 치르기 전 대모로부터 가만히 누워 있으라는 말을 전달받았죠. "

미즈아게는 나름 격식과 절차를 따져 치러지는데

당사자인 남성과 게이샤는 사케잔을 주고받으며 잠자리에 앞서 상대한 연회를 대접받았다고 해

" 게이샤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는 남성을 기다립니다.

아, 이때 화장을 지우진 않아요.

왜냐면 남성이 게이샤에게 키스하거나 하는 일은 실상 없기 때문이죠. (그냥 섹스하기 바쁘다는 뜻) "




 

놀랍게도 1930년대 기온에서는 사상 최고가인 무려 10억원에 미즈아게를 치른 게이샤도 있었어

하지만 이처럼 많은 금액은 대모에게 좋은 일일 뿐이었으며

사실상 오늘날까지도 게이샤에게 있어 미즈아게에 대한 지불금은 다 소용없는 것들이지

그럼 게이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

사실 게이샤가 실질적인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선 특히 돈 많은 고객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후원해 줄 수 있는 다나(Danna)를 잡아야 해

때문에 모든 게이샤들의 우선적인 목표는 괜찮은 다나를 잡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보통 다나는 원하는 게이샤의 비싼 생활비를 부담하는 대신 그 대가로 그녀를 정부로서 맞이할 수 있어




 

예전엔 대모가 다나를 직접 지정해주었기에 게이샤는 남성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게다가 관습대로라면 일단 다나가 정해지는 그 순간부터

게이샤는 여러 명의 고객을 상대한다 하더라도 성관계만큼은 평생 다나 한 사람과만 가능했지

즉 과거엔 다나를 얻는 것도 복불복이었던 셈이야




 

예나 지금이나 교토의 기온에서는 일본 최고의 게이샤들이 육성되고 있어

그 수련생들은 흔히 마이코(Maiko)라 불리는데

특히 이들이 자랑하는 빼어난 외모는 현대에 와서도 변함없을 정도라고 하지

앞서 언급했던 3년 경력의 견습 게이샤 요이코 기억나지?

요이코가 바로 기온의 마이코야

그녀는 16살 때 스스로 부모님께 게이샤가 되겠다고 말했던 그날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요이코의 말에 따르면 특히나 아버지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

하지만 결국 부모님께 자신의 의견을 피력시킨 요이코는

지금도 자신의 이름이 새긴 무명패가 붙은 게이샤 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중이야



 

요이코를 데리고 있는 대모는 적지않은 돈을 그녀에게 투자하고 있어

때문에 요이코는 대모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매일 열심히 춤과 음악, 다도 등을 배워야 해

" 모두들 '기온'은 혹독한 곳이라는 옛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예전처럼 마이코로 팔려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아버지 직장동료께서 딸을 그런 곳에 보낸다고 심한 말씀을 하셨었나 봐요. "

" 저는 마이코가 되기 전 교토에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들어왔어요.

때문에 제가 정말 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건 아닌가하고 심하게 걱정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저를 잘 보살펴 줘요.

못된 사람들을 만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아요. "




 

자 그렇다면 게이샤의 치장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우선 충분히 예상 가능하듯 게이샤의 유난히도 붉게 칠해진 입술은 오로지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거야
 



 

또한 게이샤는 얼굴을 비롯해 목덜미까지 하얗게 분칠된 다른 부분들과 달리

머리카락이 난 가장자리는 미처 화장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게 일반적인데

이는 마치 가면을 쓴 듯한 얼굴을 돋보이게 하고

더불어 관능적인 맨살을 드러내며 남자를 매료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함이지



달리 표현하자면 뭐랄까

서양에서 여성들이 다리의 맨살을 보이며 섹시미를 강조하는 것과 유사한 거야

우리야 별 생각없을 지 모르겠지만 게이샤들은 보통 가면에 가까운 분장을 하면서도 가장자리 맨살을 남김으로써 남자들로 하여금 나체를 보는 듯한 관능미를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게이샤의 재산 1호는 뭐니뭐니해도 기모노야

적어도 이름 좀 날리는 게이샤라면 기모노가 최소 스무 벌 이상은 되어야 하지

놀랍게도 어지간한 고급 비단으로 제작된 기모노는 그 값이 1000만원을 호가하는게 보통이라고 하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이 든다고 해도 게이샤는 늘 최고의 제품만을 선호하는데

이는 그녀들에게 있어 기모노 자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를 뿐만 아니라

좋지 못한 품질의 기모노를 입는 게이샤는 흔히 3류로 취급받기 때문이야

그런 탓인지 고가의 기모노를 많이 소유한 게이샤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화재야

애지중지하는 기모노들이 다 타버린다는 건 전 재산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거든



 

품질에서 나아가 게이샤들이 계절 별로 각기 다른 색의 다양한 기모노를 장만하는 것은 물론이야

새해의 시작을 상징하는 검은색 기모노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것이며

꽃이 수 놓아진 분홍색의 기모노는 여름, 단풍 무늬의 주황색 기모노는 가을, 그리고 녹색의 기모노는 겨울에 입는 것이 일반적이지

또한 게이샤는 기모노의 옷 선을 살리기 위해 속옷을 입지 않아

때문에 그냥 알몸인 상태에서 그대로 기모노를 걸치며 마지막엔 허리를 지탱해 주는 오비를 두르지

특히 견습 게이샤들은 비교적 화려한 색상의 기모노를 골라 입는데

펄럭일 정도로 긴 소매와 가슴 높이까지 올려 맨 오비는

손님들에게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해



게이샤는 머리치장에 대해서도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야

마이코의 머리 모양 역시 의상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스타일만을 고수해야 하거든

실제로 머리의 일부분은 항상 기름을 발라 핀으로 고정시키며

때때로 머리숱을 풍성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가발을 덧붙이기도 하지

게이샤들은 탈모에도 취약한 편인데 이는 항상 머리치장을 위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당기기 때문이야

그중에서도 위 사진처럼 붉은색 비단 천을 덧댄 이 머리스타일은

일명 '갈라진 복숭아(Split peach)'라고 불리는데 이는 암암리에 성적 의미를 담고 있어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확인할 수 있는 비단의 갈라진 틈은

여성의 생식기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거든

게이샤들에겐 이렇게 완성된 머리 모양을 유지하는 것도 꽤나 곤욕이야

그녀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 간격을 두고 미용실을 방문하는데 그때까지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목침을 베고 자야 하기 때문이지 나아가 게이샤들의 머리 장식은 철저히 개인 소유이며

그들에게 남의 것을 만지거나 착용하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



자 이제 게이샤의 마지막 치장인 신발을 살펴봐야지?

사실 딱히 신발은 높다란 나막신을 신는다는 사실외엔 특별할 것이 없어

뭐 굳이 게이샤들이 허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높은 나막신을 신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는 보물같은 자신의 기모노가 더러워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거야




 

게이샤들은 돈을 아끼거나 저축하는 법이 없어

사실 하는 일 자체가 외모를 단장하는데 많이 치중하기 때문에

게이샤로서 짠순이처럼 사는 삶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야

게이샤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남자 손님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능력일 거야

그 능력이라 함은 바로 견습 게이샤들에겐 아직 부족한 넓은 배려심과 즉흥적인 반응이고 말이지

견습 게이샤인 요이코의 선배로 소개했던 마메카는

손님들을 다루는 그 탁월한 능력 탓에 이미 기온에서 성공한 게이샤들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어

나아가 마메카는 이제 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한 상태로서

현재는 스스로 자신의 고객을 선택하고 자리를 예약받고 있지




 

" 마이코 시절에는 누군가의 집에서 남의 보호하에 지내야 하므로 마치 기숙사에 사는 것과 비슷해요.

물론 그것이 어려운 생활이라는 건 아니지만 사생활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죠.

또한 마이코일 때는 자신을 찾는 연회에 무조건 참석해야 하지만

독립한 후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

하지만 독립한 노련한 게이샤라고 해서 항상 단독으로 일하는 것은 아냐

오히려 그들은 게이샤 업계의 자랑스런 선배로서 종종 여러 마이코들을 대동한 채 연회에 참석하며

그들에게 최고의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하곤 하지



 

때문에 견습 게이샤들은 비록 선배를 따라 연회에 참석했다 하더라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아직 손님들 대하기에 실력이 부족하단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선배 게이샤의 말과 동작 하나하나를 새기며 이를 배우는데 온 신경을 쏟기 때문이지

그렇게 많이 보고 배울수록 더 나은 게이샤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마이코가 견습을 마치고 정식 게이샤가 되는 것은 흔히 '깃을 바꾼다'고 말해

말 그대로 정식 게이샤들은 마이코가 착용하는 붉은색 속 깃 대신 흰색 깃을 달고 다니거든

나아가 입는 기모노의 색상 역시 화려한 색에서 비교적 수수한 색상으로 변하는게 일반적인데

이는 정식 게이샤가 되면 가면처럼 하얀 분장 대신 옅은 화장만 해도 괜찮기 때문이야

앞서 소개했던 붉은 천을 덧댄 머리 모양 역시 둥글게 틀어 올린 것으로 바꾸는게 보통이지



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사실 요즘에도 일본 내에서 부부 동반 사교모임이란 그리 흔치 않아

이는 아내의 역할이란 그저 내조

좁은 의미에선 그냥 살림 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남성들이 아직 꽤 있기 때문이지

때문에 일부 남성들은 바깥 자리에서 별 죄책감없이 아내 대신 게이샤를 부르곤 해

그렇다면 일본 여성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한 예로써 게이샤를 부르는 것에 대한 모리야(Moriya) 교수 부인의 의견을 짚어보고 가자



 

" 전 제 남편이 게이샤와 어울린다는 사실이 딱히 기분 나쁘지 않아요.

밖에서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게이샤와 대화하며 풀어버리고 나면

집에 돌아올 때쯤 그이의 표정이 밝아보여서 오히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하거든요.

사실 평범한 주부와 게이샤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한 것이겠죠.

왜냐면 주부는 살림에 능숙할지 모르나 그 생활에 지쳐 자주 피곤하기에

이유없이 남편을 부루퉁히 대할 때도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게이샤에게 있어 고객은 항상 왕일 겁니다. "



 

누구든 결코 게이샤를 창녀가 아니라 단언할 순 없을 거야

그들은 돈을 통한 선택이나 의무에 의해 언제든 고객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거든

다만 일반적인 창녀에게서 기대하는 것과 달리 게이샤와의 관계는

마치 서양의 정부처럼 오래 지속되는 사이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즉 달리 말해 창녀처럼 단발적으로 몸을 파는 것이 게이샤의 주된 생계수단은 아니란 거야

오늘날엔 특히 그 차이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예전처럼 대모들이 마이코에게 미즈아게를 강요하거나

평생 남의 정부로 살아가야 한다며 강박심을 주는 일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지

하지만 다나로 불리는 일종의 후원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여전히 그 분류 범주는 애매한 것이 사실이고 때문에 이는 전적으로 판단하는 스스로의 몫일 테야




 

게이샤의 본질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앞으로도 그녀들은 일본에서 살아있는 문화로써 쭉 계승될 거야

드문 예이지만 아직까지 그 일로부터 전통적 매력을 느끼며 매료되는 여성들이 종종 있거든

게다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데 타고난 능력을 보여왔어

따라서 게이샤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써 존속하는 한

일본이란 국가는 이의 보존을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거야

물론 게이샤란 문화집단은 인공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그 미래가 매우 불확실한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야





읽어줘서 고맙다 .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9 00:59

기원전 430년 ~ 426년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전염병

아테네 역병





스파르타가 아테네에 침략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져




겁에 질린 촌락 사람들은 너도나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아테네 성벽안으로 몰려든다.



 

성벽안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쓰레기와 분뇨 등으로

도시는 순식간에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냄새를 맡고 병원균을 사람에게 옮겨줄 곤충과 쥐도 모여든다.
 




전염병이 활동하기 딱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



 

이들은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염증을 만들었고

피를 토하게 하거나 설사를 유발시킨다.




 

인간들은 열과 갈증때문에 발가벗고 물을 찾아 거리를 뛰어다니게 되고

그리곤 결국 거리에서, 신전에서, 심지어 우물속에서 고통스럽게 숨을 거둔다.




 

사람들은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점점 죽어 나갔고

전염병은 이렇게 강력하게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아테네 역병은 아테네 인구의 1/3을 죽였고

병에 걸렸다가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손가락,발가락,시력등을 잃었다.



 

전염병의 공격은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병들게 만들었다



 

아테네 역병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자,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자랑하던 아테네가 무법천지로 돌변하게 된 것

사람들은 남의 것을 훔치고, 강도나 살인까지 서슴없이 저지른다.

 



 

사람들의 생활이 이러니 군대라고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아테네 역병이 돌기전까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승리가 손에 잡힐 듯한 상황.




 

하지만 아테네역병이 아테네를 덮치면서 아테네의 국력과 전투력은 크게 저하되고

아테네의 훌륭한 군인이자 정치가인 페리클레스마저 데려가 버린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끌어가던 인물이었는데,

전염병이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닫은 셈이 된것이다.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한다.

전염병이 아테네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고

이후 스파르타가 이끄는 그리스까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사람들은 전염병이라는 무서운 존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당시 사람들의 교류범위가 좁아

고대의 전염병은 국지적인 영역에 해를 입히고는 사라지는데...

 



 

1304년대

흑사병이 창궐한다.



 

흑사병은 몽골이 유럽을 침략했을 때 쯤 그 활약을 시작한다.

흑사병은 먼저 몽골군에게 붙어 있다가,전쟁중에 유럽인들에게로 옮겨붙는다.




 

당시 몽골군은 크림반도의 카파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공격방법의 하나로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성 안으로 던져 넣는다.





흑사병은 재빠르게 유럽인들에게 옮겨갔고​​​​​​


때마침 카파성안에 제노바에서 온 상인들이 배를 타고 돌아가면서

흑사병을 전 유럽에 퍼뜨린다.




 

배가 정박했던 도시마다 흑사병이 창궐해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전염병을 피해 항구도시를 떠나는 사람을 따라 전염병은 내륙으로 활동범위를 넓혀

그렇게 흑사병은 유럽전역을 휩쓸면서 유럽인구의 절반가량을 죽여버린다.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에게 기도했지만

교회는 흑사병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경건한 사람도 죄인만큼 죽었고,

촉망받던 성직자들도 흑사병에 걸려 죽으면서 교회의 권위는 크게 떨어진다.

 



 

또한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노동력이 귀해지면서

중세 봉건제도도 무너지게 된다.

교회가 이끌어 가던 중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것.




 

이처럼 중세에 들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전염병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못했다.

교회가 이끌어 가던 시대였던 만큼 전염병을 멈춰달라고 신에게 열심히 빌었을 뿐.




 

전쟁과 교류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중세시대 때부터 전염병이 미치는 범위는 확대되고

흑사병은 유럽대륙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세 대륙은 흑사병을 거치면서

이후 서로의 질병에 어느정도의 면역력을 갖게 되는데...

-2부계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3 02:20

흑사병보다 더 큰 피해를 낸 전염병.



흑사병으로 봉건제가 무너진후 서양은

강력한 왕이 나라를 지배하는 절대왕정 시대를 맞이한다.

유럽국가들은 돈이 되는 향신료 무역에 참가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신항로 개척에 열을 올린다.




그 과정에서 에스파냐의 지원을 받은 탐험가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뒤따라 수많은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전염병도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다



 

그중 가장 강력한 전염병은 바로 천연두

신대륙 발견전에 유럽에서는 천연두가 한동안 유행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천연두에 어느정도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와 교류가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천연두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

천연두를 가볍게 앓고 있던 유럽인 탐험가나 군인을 통해

병원균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로 옮겨가자 원주민들은 셀 수 없이 죽어 나간다.




 

천연두가 활약하면서 1억 명으로 추정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90%가 죽었다.

이는 흑사병보다도 더 큰 활약으로 천연두는 전염병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된다.

천연두의 습격은 원주민들에게 실로 파괴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천연두 때문에 원주민이 다 죽은후 신대륙에 도착한 한 영국인이

'신이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땅을 청소해 주셨다'라고 말을 할 정도

 




천연두가 아니었다면 유럽은 신대륙을 쉽게 점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근대 전기의 전염병은

신대륙 발견과 천연두로 인해 규모가 전 지구적으로 넓어졌다.

이제 전 세계는 서로의 질병을 공유하고 함께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은 전염병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래서 전염병의 전파 범위가 넓어지면 그 파괴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1800년대 사람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공장이라는걸 짓고 석탄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들었고, 공장 폐수와 생활쓰레기로 환경이 더러워졌다.





또다시 인간들이 전염병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준 것



 

이때 바로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되는 콜레라가 등장한다.

사실 콜레라는 아주 옛날에 활발히 활동했던 전염병으로,

이때는 인도의 풍토병으로 거의 힘을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영국이 인도로 진출하면서 콜레라가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콜레라는 낯선 사람들의 몸속으로 침투했고

식민지 정복전쟁과 무역 등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간다.




 

하지만 이런 콜레라한테도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깨끗한 물에서는 살 수 없다는것

위생만 신경쓴다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전염병이다




 

하지만 산업화된 도시들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거리에 쌓인 오물과 생활하수가 결국 땅으로 스며들거나 강으로 흘러들었고,

사람들은 강물을 끌어다, 혹은 더러운 우물 물을 길어 마셔

한명의 콜레라 환자가 생기면 그의 배설물이 상수원으로 퍼졌고

다시 그물을 다른 사람들이 마시면서 콜레라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콜레라는 구토와 설사를 일으켜서 몸안의 수분을 다 빼앗아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전염병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인간들은 전염병을 극복하려고 뭔가 시도해 보기 시작한다.




 

에드윈 채드윅의 도시를 청소해서 콜레라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에 따라

영국에는 공공의료법이 만들어졌고

도시청소를 시작해서 훗날 콜레라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




 

또한 존 스노는 오염된 식수가 콜레라의 원임임을 밝혀내고

영국에서는 체계적인 상하수도 시설을 만든다.

도시를 청소하고, 식수를 철저하게 정화시키면서 콜레라를 제압하기 시작.




 

또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미국도 영국을 따르면서 그 결과,

1890년대에 콜레라가 다시 많은 나라를 덮쳤을때 유럽과 미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염병이 인간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근대 후기의 전염병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1865년 프랑스의 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는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세균이라 부르며

세균이 전염병을 일으키는 것을 증명해 냈다.

 



 

1882년에는 독일의 미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미생물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시험하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콜레라를 일으키는 미생물의 정체도 밝혀냈다.




 

이후 수십년을 지나며 연구자들은

전염병의 원인, 전파 방식, 예방, 치료등에 관한 주요 발견들을 거의 해마다 쏟아냈다.

이렇게 전염병의 신비를 하나둘씩 풀어나가면서 현대의학은 눈부시게 발달한다.



1969년, 감염에 대한 개념을 발견한 지 약 100년 만에

미국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는 선언한다.

"전염병 질병은 이제 대부분 끝이 보인다."




 

인간들은 백신과 항생제를 이용해서

천연두, 결핵, 콜레라 같은 전염병들을 잘 막아냈고

사람들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음을 굳혀가던 그때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나타난다.

 



 

자연을 더 많이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아프리카 밀림을 벌목하면서 밀림에 살던 원숭이와 접촉하게 되었고,

그때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




 

또 사람들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사로잡혀

제 1차 세계대전 중 병영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을 간과하기도 했다.




 

인간들은 최근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에스키모 시체를 연구해

스페인 독감이 조류독감의 변종이라고 밝혀낸다.

조류독감은 인간이 조류의 생활 공간을 위협하면서 접촉하게 되자,

조류의 독감이 인간에게로 옮은 것




 

2003년 여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사스도 야생 사향고양이를 요리해 이용하면서 생긴 병

인간이 탐욕을 채우려고 자연을 훼손하고 이용하려고 하는 한,

전염병은 결코 정복되지 않는다.

 



 

게다가 새로운 변종 전염병이 생기거나

사스가 항공기를 타고 일주일 안에 전 세계로 확산된 것처럼,

전염병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빠른 교통수단을 타고 확산된다면.

이래도 과연 인간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을까 ?

 



 

현대에 들어서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신종 전염병들은 약도 안 듣도록 독해졌고, 더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치료제가 개발되고

철저한 검역과 격리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신종 전염병의 확산을 억제하고 있다.

 



 

그 성과로 현대의 전염병은 과거의 흑사병이나 천연두처럼

세계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

현대의 전염병은 분명 독해졌지만, 인류는 전염병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完-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3 02:17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0 22:52



>> 예전에도 한번 올라온 글인데 다시 한번 정리해서 올려봄 <<


15년도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의대의 생물통계학자 크리스티안 토마세티(Christian Tomasetti)와

종양학자 베르트 보겔슈타인(Bert Vogelstein) 교수가

<사이언스>지에서 암의 대부분은 세포분열 과정에서 재수없음 걸린다고 발표하자 

멘탈깨진 WHO와 네이처지에서 환경적요인을 너무 과소평가 한다고 반박함

17년도에 <사이언스>지에서 다시 환경적요인도 중요하지만 

그냥 암은 운빨은 팩트라고 다시 반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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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국제암연구소에 등록된 69개국(인구 48억명)의 17종 암 자료와 줄기세포 자료를 분석해

암 발생 위험과 줄기세포 분화 횟수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니,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환경 조건이 다른 국가간 상관계수 차이가 거의 없어 암 발생에 환경보다는

DNA 복제 과정의 무작위 오류가 더 큰 원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세포분열을 많이 할 수록 당연히 돌연변이가 나올 확률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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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

돌연변이가 하필 세포의 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축적되면서

세포가 끊임없이 증식해 주위 조직을 침범하고 전이되는 것이 바로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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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생에 걸쳐 나타나는 세포분열 횟수는 조직 부위별로 다르다.

둘째, 세포분열이 자주 일어나는 조직 부위에선 세포 복제 과정에서 무작위적 오류와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그래서 그중에 암세포가 출현할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셋째, 조직 부위별로 세포분열 횟수와 암 위험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strong correlation)’가 나타났으며, 이는 세포의 무작위 돌연변이가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보다 더 중요하게 암 위험에 기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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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남성>



 


존스홉킨스대의 크리스티안 토마세티 박사 등 연구팀은 32종의 암 게놈 염기서열과 역학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돌연변이의 3분의 2는 정상세포가 분열할 때 우연히 생기는 디엔에이 복제의 무작위 오류 때문임을 밝혀냈다.

환경에 의한 것이 29%, 유전적 요인이 5%, 무작위 오류에 의한 것이 66%였다




그렇다고 막 살라는것이 아니고  

조기검진이 중요하며 환경적 요인 또한 중요함 

유전적 요인은 암에 관해서는 미미함 


폐암의 경우 발암 유전자 돌연변이가 DNA 복제 무작위 오류에 의한 비중이 35%

췌장암은 77%,

뇌암·골수암·전립선암 등은 95% 까지 치솟음 


특히 폐암은 환경적요인이 훨씬 큼







한국인 1/3이 암으로 죽는다 

암으로 죽으면 다행이지

주변정리하고 야동도 지우고 돈 있으면 투병생활 하거나 

스위스가서 안락사받을수도 있고 


심장/뇌 혈관질환은 ㄹㅇ 스위치 꺼지듯이 아무것도 못하고 죽임당하는 거임 

치매 걸리면 똥지리다 죽는거고 

교통사고 나면 즙되서 죽는거고 

암으로 죽는것도 그나마 다행인거 같음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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