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 오랜만에 글쓴다이기 
이번에 다룰 주제는 
CJ그룹이 한국영화시장을 평정하고 
장악한 이유를 알아보기로 함 

사실 지난 수년간 CJ에 관한 정보글은 
수십개정도 써왔는데 그동안 많은 게이들이 
CJ에 대해 다루면서 방송이야기는 
그만좀 하고 영화판 이야기좀 해달라 
왜 이렇게 CJ가 문화제국이 된거냐 
다뤄달란 요청이 많아서 
20년 넘게 CJ ENM을 총괄한 
이미경 부회장을 중심으로 
도대체 어떻게 CJ가 영화판을 접수했는지 설명함 


# 문화제국 CJ가 군림하는 
   대한민국 영화시장 




뭐 이미 다들 아는 부분이지만 
대한민국 문화산업, 특히 영화산업을 언급할 때
CJ의 존재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들의 입지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함
북미에 디즈니가 있다면
한국엔 CJ가 있다할 정도임 


 


한국 극장 및 스크린 수 (위) 
2018년 기준 영화 상영시장 점유율 (아래) 


특히나 CJ가 무서운 점은
바로 수직계열화를 통한 
시장장악을 이뤘다는 점인데 
제작과 투자, 배급과 상영, 
심지어 2차 시장 (케이블 재방송이나 OTT 서비스) 까지 
꽉 잡고있다는 점인데 사실 이 문제로 인해 
좌우 성향을 떠나 역대 정부에선 
손을 대려고 시도는 했는데 번번히 이뤄지지않았음 
왜냐면 그게 단칼에 해결되기가 참 난감함 
이미 20년 넘게 이런 구조로 이뤄지다보니 
외과수술(?) 을 하려고 해도 힘든 상황임 
잘못하면 산업 전체가 죽어버리는 결과가 초래되니까 
뭐 예전에 언급한 적 있지만 
아무리 영화판이 좌파판이라해도 
여기엔 우파 (기업적 측면), 좌파 (종사자들의 측면) 
각기 이해관계가 존재함 그리고 이미 사회적으로 
일종의 카르텔같은게 양쪽 진영에 다 있기때문에 
그에 관한 저항이나 반발도 극심한 상황임 



뭐 문재앙 정부가 야심차게 
스크린 독과점을 막겠다며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추진한다했지만 
이에 관한 논란은 더욱더 커지고있음
특히나 반기업 정서를 바탕에 둔 
문재앙 정부의 또다른 기업 죽이기, 규제양산이란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평가됨 




개인적으론 이런 규제 딱 질색이긴 한데 
적어도 독과점 상태로 판단되는 CJ나 롯데의 경우 
그들이 제작투자하고 배급상영하는 영화에 한정해서 
CGV나 롯데시네마에서 과도한 상영은 
제한하는 표적조치는 괜찮지않나 생각됨 
독과점이 지나쳐 아예 자유로운 경쟁까지 
방해되는건 막아야하니까 


 



아 그리고 몇몇 게이들이 
CJ가 영화 제작도 하냐 의아해하던데 ㅇㅇ 
예전부터 뭐 꾸준히 제작했었고 
2016년엔 아예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이끄는 JK 필름을 
전격적으로 인수해 자회사로 두고 있음 
그러다보니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논란이 더욱더 커지는 양상임 



JTBC 뉴스룸 

게다가 요즘 떠오르는 OTT 시장에도 
중앙그룹 (JTBC)와 손잡고 
들어가는 판국이니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음 
걍 다 해먹으려는거니까 
이 부분에 대한 개인적 코멘트를 
최종적으로 언급하기로함
 

# 한국의 문화권력 
   CJ 이미경 부회장과 
   CJ의 권력구조 


 



많이들 알겠지만 CJ 이미경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손녀로 
현 이재현 CJ 회장의 누나임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문화산업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알려졌는데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평가가 엇갈리는 양반임 




그리고 그동안 정보글에서 직간접적으로 
지겨울 정도로 강조한 부분이지만 
남동생이자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 회장과 더불어 

가장 이병철 회장의 사랑을 받은 인물로 알려짐 
그도 그런 것이 첫 손주고 딸이다보니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다고 알려짐 
(원래 딸이나 손녀사랑은 아빠, 할아버지고 
아들이나 손자랑은 엄마, 할머니가 불변의 진리니까) 



채널 A 뉴스 

다들 알다시피 이재현, 이미경 남매의 
아버지인 이맹희 회장의 경우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로부터 내쳐지고 
11살 어린 동생인 이건희 회장과
대립하는 관계였음
그래서 과거 이맹희 VS 이건희
두 형제간 소송전 당시에 
평소 극도로 말수가 적은 이건희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11살 많은 형에 관해 감히 운운하면서
디스를 거의 랩하다시피하 화제가 되기도함 
(표정만 봐도 깊은 빡침이 느껴짐
한 기자는 기자질 20년 넘게하면서 저 양반이 
저렇게 한번에 말많이 하는거 처음 봤다고함) 



이재현, 이미경 남매 

하지만 악화일로를 걸었던 
이맹희 회장이나 삼성가의 관계와 달리 
이재현, 이미경 남매는
이병철 회장의 강력한 지원속에서 
탄탄대로를 달렸다는게 대체적인 평가임 
물론 후일담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함 
(할아버지랑 작은아버지 VS 아버지 구도니까) 




뭐 장손녀고 장손이래서 이쁨받은 것도 있겠지만 
이맹희 회장의 부인이자 삼성가 맏며느리였던 
손복남 고문의 역할도 컸다고함 
이맹희 회장은 존나 미움 받았지만 
(그리고 그럴만한 사유가 충분하기도 했고) 
손복남 고문은 두 남매를 앞세우고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면서 (정치질도 잘하시고) 
자신과 자식들의 입지를 지켰다고함 
뭐 사실 여기까진 그동안 많이 다룬 내용이라
넘기려고 했는데 내가 예전 글을 삭제하기도 했고 
처음 보는 게이들도 있을거같아 설명하고 넘어감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위)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사장 (아래) 


많이들 알겠지만 삼성가의 경우 
남매 분리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함 
그래서 사실 이 점으로 일부 여성계로부터 
좋은 점수를 얻는 부분도 있음 
뭐 사실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딸들을 경영참여시켰으니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존나 파격적이긴함 
(LG등과 비교해보면 더하지) 

가령 삼성그룹의 경우엔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를 중심으로 
그룹 전체를 총괄하면서 
이부진 사장이 신라호텔과 면세점을 
신세계 그룹의 경우엔 
정용진 부회장이 이마트를
정유경 사장이 신세계 백화점을 맡아서하고 있음 




CJ같은 경우도 동생인 이재현 회장이 
제일제당을 중심으로 그룹을 총괄하면서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 CJ ENM을 맡아서 하고 있음 
그리고 그러한 권력구조는 
이재현 회장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계승됨
그래서 원래는 이재현 회장의 아들인
이선호 제일제당 부장이 
제일제당을 중심으로 CJ를 총괄하고 
이재현 회장의 딸인 이경후 CJ ENM 상무가 
고모의 뒤를 이어 CJ ENM을 맡는걸로 유력했음 
(사실 이건 지난전 정보글에서 다룬건데 
글 삭제해서 설명을 위해 다시 언급함) 



채널 A 뉴스 

근데 문제는 이 양반이 최근 대형사고를 침 
그러다보니 그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던 
경영권 승계가 전면 중단되고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단 평가임 
1990년생을 부장까지 앉힌 것도 여러모로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했다는데
그런 와중에 초대형 리스크가 터진 셈이니 
CJ 입장에선 두고두고 상당히 난감한 상황임 


 



그래서 많은 전문가나 언론들은 
이경후 상무를 많이들 거론하며 이쪽으로 
베팅하는거같은데 글쎄 그건 지켜봐야한다고 생각됨
 
그러다보니 이 양반 남편인
정종환 상무가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고함 
심지어 딸이랑 사위한테
승계가 이뤄지는게 아니냐는
확인되지않은 카더라, 찌라시가 난무하고 있음 


 


CJ 제일제당 이선호 부장 (위)
이선호 부장의 지분구조 (아래) 


개인적으론 이선호 카드는 
아직도 유효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있음 
(아무래도 삼성가 적장손이다보니 
원로그룹이 여전히 팍팍 밀고있다하고) 
다만 일련의 사태로 인해 
내부 여론이 상당히  회의적 or 부정적인데 
이걸 어떻게 수습할지가 관건이라 생각됨 
뭐 다른 기업의 사례로 보듯이 
아무리 사고를 쳐도 시간이 흘러 잊혀지고 
어느정도 분위기가 수습되어
경영권 승계받은 사례는 허다하니까 




왜 이미경 부회장 이야기를 하면서 
CJ 집안 이야기를 하냐 할텐데 
CJ란 문화제국을 언급함에 있어 
그에 관한 권력구도를 이해하는건 필요하다 생각했음 
나중에 이미경 부회장의 완전 은퇴 후 전면에 등장할
포스트 이미경 (이경후) 체제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함 
특히나 관련해서 일하고 있거나 
관심있는 게이들은 더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겠지?




여기까지 CJ의 한국영화시장이나 
CJ의 권력구조에 대해 다뤄봤음 
이제 본격적으로 이미경 부회장이 CJ를 이끌고 
어떻게 한국영화시장을 장악했는지 알아봄 


# 드림웍스를 등에 업은 CJ 
   본격적인 영화사업의 시작 




뭐 그동안 내 정보글 쭉 봐온 게이들은 
다소 식상하겠음 여기에 관한 정보글은 
그동안 질리게 썼기때문에 최대한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노력은 해보겠는데 
많이들 알겠지만 오늘날 CJ가 있기까지는 
드림웍스란 존재를 빼놓을 수 없음 




타도 디즈니를 내걸고 의기투합한 
스티픈 스필버그 감독이나 
제프리 카젠버그 회장의 경우는 
새로운 제작사를 설립하고 파트너를 물색함에 있어 
당시 성장가능성이 높은 동아시아 지역 기업들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뭐 일본기업이야 
이미 할리우드에 진출했거나 
다른 제작사들과 관계가 있는 상황이였지만 
당시 사업실패와 자금난 등을 이유로 
할리우드에 손을 떼던 시절이였다함 
중국이야 1990년대만 하더라도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던 상황으로 
이런 대규모 합작을 감당할만한 기업이 없었음 
일단 관심조차 없었던 상황이고 
그렇다면 대상은 한국기업으로 좁혀지게되는데
많이들 알겠지만 원래는 삼성이 유력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불일치하여 무산되고 




이 틈을 노린 CJ 이재현, 이미경 남매가 
그들에게 접근해 CJ 제일제당은 

3억달러(3500억원)을 투자해
드림웍스SKG의 2대 주주가 되는 조건으로 참여함
3억달러는 당시 제일제당 연매출의 20%가 넘는 규모였음 
제일제당은 드림웍스 투자를 통해 배당금 외에
드림웍스의 영화 및 비디오, 음반, TV프로그램 등의
아시아 배급 판권 (일본 제외)을 확보함 
또한 영화배급, 마케팅, 재무 관리 등 
할리우드식 시스템을 지원받는걸로 합의를 했는데 
많이들 알겠지만 한국영화시장의 
배급이나 상영시스템, 마케팅 전략등은 
다른 영화시장에 비해 상당히 미국화 된 편임 
당장 이웃 거대시장인 일본, 중국시장과 
비교해도 알 수 있는데 CJ가 영화사업을 시작하면서 
할리우드에서 다이렉트로 배워와서 그럼 

물론 이게 시간이 지나 한국화가 되긴 했지만 ㅋㅋ 

아무튼 이재현, 이미경 남매는 
1995년 4월 드림웍스 투자를 발표한 뒤
그 해 8월 제일제당 내 멀티미디어사업부를 신설
영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함 



영화 인샬라 

그렇게 CJ가 1997년 1월 첫 제작·배급 작품인 
영화 인샬라를 런칭하게 되는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의
김종학 PD를 제작자로 
배우 최민수, 이영애들을 내세워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쏟아붓고 
모로코 올로케이션까지 감행하며 
야심차게 도전했는데 결과는 



TVN 남자친구 

서울시내 15개 극장에서 서울관객 5만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쫄딱 망함 
당시 CJ 내부에선 ㅅㅂ 도대체 왜!!!! 
그런데 왜!!!! 망했냐며 격앙된 (?) 분위기였다는데 
아무래도 영화사업에 첫 진출하다보니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였다는게 대체적 평가임 
근데 망해도 노무 망하다보니 타격이 컸다고함 


 



그러다 얼마 지나지않아 나라가 망함 
1997년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는 
전국민을 얼어붙게 만드는데 
다들 알겠지만 사람은 어려울수록 
문화나 레저에 관한 지출부터 줄이기 마련임 
당장 의식주에 들어가는 비용만으로도 
감당이 안되는데 문화생활 즐길 여유가 어딨음? 
더군다나 숱한 대기업들이 몰락하면서 
기존 영화사업에 진출했던 대기업들
도 
대거 철수를 선언하고 발을 빼기 시작함 



이때 CJ 내부에서도 이대로 가다간 망한다 
빨리 영화쪽에 발을 빼야한다 
의견들이 쏟아져나왔지만 
이재현, 이미경 남매는 무조건 GO를 외침 
이들의 논리는 IMF는 충분히 극복가능하고 
오히려 다른 대기업들이 빠지는 이때가 
타이밍이다 지금이야말로 무혈입성하는거다



강변 CGV 11 

그래서 1998년 4월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11 을 오픈하게되는데 
(이것도 할리우드 시스템을 보고 따라한거임) 

다른 대기업들은 물론이고 CJ 내부에서도 
미쳤다는 반응이 장난아니였다고함 
그도 그런 것이 1998년 4월이면 
IMF체제에 막 진입하던 시기인지라 

그 후폭풍이 장난아닌 시절인데 
도대체 여길 누가 오겠냐 반응들이 많았는데 



JTBC 밥잘사주는 예쁜누나 

CGV강변11은 개관 첫 해 관객 수만 350만명을 기록함 
객석 점유율도 평일 38~41%, 주말 77~80%로
당시 서울 시내 개봉관의 평균 객석 점유율이
평일 15%, 주말 45%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해
2배 이상 앞서는 점유율을 기록함 ㄷㄷ 
한마디로 대박이 난건데 예상을 깨고 
멀티플렉스가 성공한 요인은 딱 2가지라고함 



TVN 김비서가 왜그럴까 

첫째는 IMF고 나발이고 전쟁이 터져도 
커플은 데이트를 함 뭐 요즘이야 
데이트할 데 많지만 저 당시만 해도 
연인들이 만나서 그나마 저렴하게 
시간때울만한 공간이 없었다고하며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다고함 
그로 인해 대안이 바로 극장이였다는 점 
그렇기때문에 연인들을 한 중심으로 
고정수요가 존재했다고 알려짐 

둘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문물 (?)에 대한 관심이 지대함 
새로 나온게 뭐가 생겼다하면 
바로 몰려가서 이용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초고속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보급률이 폭발적이라 
평가받는 것도 이러한 문화때문인데 
강변 CGV의 흥행도 그런 맥락이였다함 
실제로 동서울터미널을 통해 
지방에서도 상당수 상경해 인산인해를 이뤘다니 
CJ 입장에선 인샬라의 실패로 인해 
위축된 분위기가 상당부분 만회됐다고함 



영화 딥임펙트 

그리고 드림웍스와 제휴가 결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게되는데 그도 그런것이 
드림웍스와 제휴를 통해 
안정적으로 할리우드 최신작들을 
공급받았다는 점임 
예전 정보글에서도 강조했지만 
한국영화시장의 가장 큰 장점이 하나 있음 
바로 할리우드 최신작을 다양하고
빠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인데 
보통 일본같은 경우는 지연개봉이나 미개봉이 많고 
(뭐 요즘은 빨리 개봉하는 작품도 있지만)
중국같은 경우는 아예 국가적으로 
할리우드 외화 수입을 제한하고 있음 
반면 한국같은 경우는 정말 이런거까지 
수입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B급 영화까지도 할리우드라면 닥치고 수입해오는데
(오죽하면 제발 이런 영화는 수입해오지말라고 
일본이나 중국처럼 해야한단 의견들도 있음 ㅋㅋ) 



1999년 CJ 배급라인업 

CJ 입장에선 드림웍스라는 안정적이고 
검증된 공급처가 확보된 셈이니 크게 이득이지 



영화 슈렉 1 

그리고 예전에 정보글로도 다룬적있지만 
2000년대부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운지하고 
드림웍스가 한창 떠오르던 시기였음 
2001년 개봉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애니메이션 슈렉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2001년 박스오피스 순위 

슈렉같은 경우는 당시 전국관객만 
240만을 동원해 애니메이션치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2001년 박스오피스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상위 8개 작품중에 조폭물이 5개임 .... 
이런 상황에 상당히 선방한거임 ㅋㅋ 

이러한 드림웍스 르네상스 (?) 시기 
CJ가 그 덕을 톡톡히 보게됨 
그래서 2014년 1월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이전까지 
한국은 세계적인 드림웍스 소비국이였음 
(일단 드림웍스 애니자체가 한국관객들한테 
잘 먹혔고 CJ도 존나게 밀어줬었고) 



이러한 부분들이 딱 맞아떨어져 
,CJ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됨 
그래서 CJ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드림웍스의 존재를 빼놓곤 이야기할 수 없고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CJ와 드림웍스의 친목질이 장난아니였음 ㅋㅋ


#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개막 
   그로 인한 폭발적 성장 


 


영화 쉬리 (위) 
MBC 뉴스 (아래) 


CJ가 영화시장을 장악하는데는 
드림웍스란 든든한 파트너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시기를 잘만난 요인도 있음 
이게 무슨 개소리냐 하면 
사실 IMF 이전만 해도 한국 극장가에서 
한국영화는 결코 대접받는 존재가 아니였다함 
할리우드 영화 일색으로 
일방적으로 쳐맞던게 1990년대 한국영화였는데 
IMF 이후로 이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흔히 영화계에서 한국영화는 
1999년 개봉한 영화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을 많이함 
1980년 개봉한 배우 하명중 장미희 주연의 
영화 느미 이후로 한국영화는 
지난 18년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못했음 
싹 할리우드 영화가 독식하다시피했는데 
19년만에 쉬리가 1위를 차지한거임 ㄷㄷ 



SBS 낭만닥터 김사부 

뭐 배우 한석규 성님 지금이야 뭐 
예전같진않지만 저 당시만 해도 
지금 웬만한 흥행배우들 쌈싸먹을 정도로 
대단한 흥행력을 자랑했다 알려지는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극초반까진 
한석규 천하로 불렸을 정도라고 알려짐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위) 
2000년 박스오피스 순위 (아래) 


2000년은 CJ에게 특별한 한해인데 
그도 그런 것이 본인들이 배급한 한국영화, 외화가 
각각 박스오피스 1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함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 작품에 대해 
그 양반 정치적 성향이나 작품 스타일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이긴 한데 1999년 쉬리에 이어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대성공함에 따라 한국영화 점유율은 급격히 올라감 
물론 2000년 급락하기도 하지만 
2001년부터 쭉쭉 올라가긴 시작하는데 



1996~2007년 한국영화 점유율 

보다시피 1999년 이전만 해도 
20~30% 수준에 머물던 한국영화가 
1999년 쉬리열풍과 더불어 
45%를 찍고 2000년 잠시 급락하지만 
2001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게됨 
그래서 오늘날과 같이 50~60% 점유율을 
기록하게 되는데 CJ가 이때 제대로 재미를 봄 




돈지랄 전략을 통해서
한국영화를 대거 제작하면서 
자체 점유율을 높이게 되고 




동시에 CGV 지점들을
폭발적으로 확충시키면서 
파이를 키우게 되는데 
2001년에만 무려 1350만에 달하는 
관람객을 동원하며 
완전한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게됨 

그래서 사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이 부분은 CJ가 나름 평가받는 부분도 있음 
첫째. 한국영화에 돈을 들이붓고 투자한 점
둘째. CGV로 대표되는 멀티플렉스를 
확충해서 시장규모를 키운 점 등등 
뭐 자기네 이득때문에 그런 거지만 
어쨋든 그로 인해 한국영화시장 피지컬을 키운셈이지 
이 점에 대해선 높은 평가를 받는 편임 


# 이동통신사/ 카드사 멤버십을 통한 
   파격적인 제휴 할인정책
   그로 인한 관객유입 



뭐 이건 이미경 부회장이 주도적으로 했다기보단 
한국영화시장이 성장하면서 전반적으로 행해진건데 
흔히 한국 영화시장의 성장을 말할 때 
언급되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음 
뭐 CJ가 나서서 돈지랄로 영화판에 쏟아붓고 
CGV 폭발적으로 늘려서 공간 만들어주고 
뭐 이런 점들도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이보다 더 신의 한수로 꼽히는게 있으니 
바로 이동통신사나 카드사 제휴 할인 서비스임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영화를 제값주고 보면 ㅄ이라 할 정도로 
이동통신사나 카드사 제휴 할인혜택이 상당했다고함 
뿐만 아니라 멀티 플렉스 자체 혜택도 해서 
중복으로 할인받는 경우도 다반사였음
(2002년이면 초4때라 가물가물하긴한데 기억은 남) 

 


KTF NA 광고 (위) 
현대카드 광고 (아래) 


그게 왜 그러냐 하면 IMF 이후로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달라지면서 
여러가지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게 집전화에서 휴대전화로 
통신수단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이동통신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 
현금 거래에서 카드거래로 결제수단이 
바뀜에 따라 또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점인데 
뭐 지금이야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지만 
저 당시만해도 한국시장은 이제 막 개척단계였음 
그러다보니 통신사들이나 카드사들은 
신규 가입자 확보에 혈안이 된 상태였고 




그로 인해 유인책으로 내건 혜택 중 하나가 
영화관람 할인서비스임 ㅋㅋ 




참고로 당시 2000년 당시 김대중 정부는 
국민들의 신용카드 사용을 통한 
경기부양을 도모했고 그로 인해 
신용카드 발급규제를 풀어버림 
소득이 없는 학식들조차 무차별적으로 발급받고 
영화관 할인도 받고 마구잡이로 지르고 다니면서 
온갖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래서 터진게 노무현 정부 출범 초에 터진 
신용카드 대란임 ㅋㅋㅋ
그래서 당시 시사프로같은데선 
영화관 할인 받으려고 카드발급받았다 
인생망친 대학생들 사연을 보도하는 등 
당시 국가적으로 대단한 사건이였다함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최악의 실정이기도 하지 
어떤 측면에선 IMF나 금융위기보다 
서민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줬던 평가도 있음 




그렇게 1999년 이후 시작된 
이동통신사 할인은 2006년 전격적으로 폐지되는데 
할인 분담금을 둘러싸고 
영화관 VS 이동통신사가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벌어진 사건임  
뭐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요인은 딱 한가지임 
서로 이미 단물 다 빼먹을대로 빼먹어서 그런거임 
더이상 서로 부담을 감수하면서 
이런 혜택을 유지할 필요성을 못느끼는거지 



물론 이 이통사 할인은 3년만에 부분적으로 
부활하긴 하는데 예전처럼 파격적으로 해주는게 아님 
그리고 이미 관객들 자체가 얼마 할인해준다고 
영화를 보고 안보고 그런 단계는 이미 지났기때문에 
뭐 그렇게까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란 평가임 




참고로 대한민국 이동통신사들이 
욕을 존나 쳐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 
과거 성장할때만 해도 과도할 정도로 
할인혜택을 남발하고 꼬시더니 
이제와선 배좀 불렀다고 각종 할인혜택을  
해마다 축소시키고 있으니 ㅋㅋ 
근데 이건 이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입장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 


# 연예계, 영화계 대모로서 
   이미경 부회장의 입지 
   한국시장에 먹히는 인재독점 




흔히 CJ 이미경 부회장을 가리켜 
연예계, 영화계 대모라고 하는데 
왜냐면 이 양반이 이른바 이미경 사단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데 영화감독이나 배우부터해서 
B급 방송인들까지도 지위나 인기여부 
상관없이 폭넓게 인재들을 확보하고 있음 




뭐 요즘은 모르겠지만 과거 이미경 부회장 
생일 파티할때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 미국에서도 스타들이 몰려와서 
북적대는게 늘 뉴스가 되곤 함 
심지어 할리우드 스타들도 비공식적으로 
참석한다하니 뭐 인맥이 쩐다 볼수도 있고 
그만큼 돈이 무섭구나 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그러다보니 이러한 이미경 부회장의 
인적확보능력을 바탕으로 
CJ가 한국영화시장을 장악하게 되는데 
단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시장에서 
먹히는 흥행감독들을 대거 독점하고 있다는 점임 
대표적인 인물로 봉준호, 윤제균 감독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CJ와 주로 작업을 함 


 



봉준호 감독같은 경우는 
대표적인 CJ 라인으로 평가되는데 
2003년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부터 
영화 괴물, 마더, 설국열차, 
최근 기생충까지 모두 CJ와 작업을 함 
넷플릭스랑 작업한 옥자땐 
살짝 삐걱거린다 평가도 받았는데 
뭐 영화 기생충 성공으로 인해 다시 친목질중임 


 


봉준호 감독의 민노당 지지선언 (위) 
봉준호 감독의 진보신당 지지선언 (아래) 


봉준호 감독은 여러모로 특이한 양반인데 
다들 알겠지만 과거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공개 지지하고 각종 사회적 현안에 대해 
좌파적인 목소리를 드높일 정도로 
봉준호 감독은 상당히 좌파성향의 인물임 
그래 여기까진 뭐 자기가 그렇다는데 
그러려니 하겠는데




많이들 알겠지만 한국시장에서 
최초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일으킨 사례가
바로 2006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임 
CJ의 깡패배급으로 악명높았던걸로 기억나는데 
이처럼 재벌해체를 주장하고 
그걸 강령으로 정한 정당의 당원으로 
열렬히 지지를 표명하고 활동하면서 
정작 재벌의 든든한 지원 속에서 
성장한 인물이 또한 봉준호 감독임 
이러한 모순된 입지로 인해 다들 알겠지만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강함 
(전형적인 강남좌파라 볼수도 있고 ㅋㅋ) 

뭐 윤제균 감독에 대해선 
이미 지겨울 정도로 많이 다룬 양반이라
CJ와 밀월관계가 대단하다
뭐 이 정도선에서 넘어가기로 하고 




이처럼 이미경 부회장은 
배우나 감독들 특히 한국시장에서
상당히 먹히는 인력들을 독점하고 있는 상태임 
그러다보니 그러한 부분 등이
CJ의 영화시장 장악에 일조하고 있는 형국임 
그러다보니 다른 경쟁사 입장에선
 
이 점이 상당히 부담스럽다고함 
새삼 뭐니뭐니해도 사람장사가 젤 무섭다고 느껴짐 




오늘은 이처럼 CJ와 이미경 부회장의 
한국영화시장 장악 이유에 대해 다뤄봄 
요약하자면 드림웍스랑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으며 
IMF이후 다른 대기업들은 다 철수하는 와중에 
선제적으로 한국시장을 개척했으며 
마침 한국영화 르네상스란 좋은 시기를 만났고 
그걸 바탕으로 과감한 돈지랄 전략이나 
멀티플렉스 확충전략, 파격적인 할인 정책 등으로 
성장을 이끌었으며 한국시장에서 먹히는 
흥행성을 갖춘 감독이나 배우들을 
독점했다 
뭐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는데 
뭐 공과를 논함에 있어 시장을 키웠다는 점에선 
높이 평가하는 부분도 있겠으나 



MBN 뉴스 

그게 한국영화의 질적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뭐 좌편향 논란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임 
물론 영화판 자체가 만국공통으로 
좌파의 텃밭인건 알겠는데 한국은 노무 심한 편이여서 ㅋㅋ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제는 물러갈 때를 
알아야한다고도 생각함 58년생이시면
이제 그만 편히 쉬시는게 낫지않나 생각함
세대교체 해야지 ㅇㅇ 



MBC 봄밤 

원래는 더 적을 이유가 많은데 
(가령 경쟁기업들의 표류라든지
손경식 회장의 존재 등등) 
내일 출근해야하고 시간관계상 이만 적기로함 
다음 정보글은 싸이월드의 몰락 이유나 
(이건 솔직히 너무 진부한 소재라 ㅋㅋㅋ) 

한국의 게임규제 관련 부분이나 
꼴리는 대로 정해서 다룰 계획임 
언제 돌아올지는 모름 ㅋㅋㅋ 

그리고 유튜브 알려달란 게이들이 계시는데 
내가 얼굴이랑 회사까고 하는건데
일베에서 알려주면 리스크가 노무 큼 ㅋㅋ 
다들 알잖음 멀쩡한 게이들이 일밍아웃 
잘못했다 어떻게 됐는지 그래서 힘들거같음 
아무튼 오늘도 역시나 긴글 읽느라 고생많았고 
다음엔 새로운 정보글로 찾아온다이기 


8줄 요약 

1 드림웍스란 든든한 파트너의 존재 
2 IMF 위기속에 영화시장에 무혈입성 
3 마침 한국영화르네상스란 시기적 호재 발생 
4 이를 바탕으로 돈지랄 전략 
5 멀티플렉스 확충, 할인 전략 
6 흥행성있는 감독과 배우들 독점으로 성공함 
7 공과가 있기는한데 과에 좀더 비중을 둠 
8 개인적으론 세대교체가 이뤄졌으면 함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1.03 22:52



19세기 일본의 산업화, 근대화 과정은 구미의 열강들의 산업화 과정과 비교할 때 매우 특이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빠르게 산업화, 근대화에 성공했으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제압함으로써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

어떻게 일본은 단시간내에 산업화, 근대화를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크게 네 가지 요인, 시대적, 지정학적, 사회적, 정책적 요인으로 구분해 살펴보자.





1. 시대적 요인




1839년 영국과 청나라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아시아 전반의 국가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일본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힘과 문명의 질서가 중국 대륙에서 구미 대륙으로 전환되는 광경을 본

일본은 자신들도 언제 다른 열강들에 의해 침략을 받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의 근대화의 도화선에 불씨를 지핀 사건이 터졌다.

1853년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동인도 함대가 일본 나가사키 항에 도착하였고

페리 제독은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일본 정부의 개항을 요구한다.

 일본은 이 사건으로부터 일본과 구미 열강과의 기술적 차이를 깨달았고 일본도

이에 발 맞추지 않으면 독립국가는 커녕 열강의 식민지가 될 위기에 처함을 직감했다.

이에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당시 봉건제도 성격의 후진적인 막번 체제를 뒤집고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국가의 역량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적 체제로써 탈바꿈한다.








이로써 일본은 아시아 최초의, 구미 열강의 후발주자로써 산업화에 착수하게 된다.

비록 일본은 열강과 대략 반세기 이상 격차가 나는 산업화 후발주자였지만 19세기 중엽의 시기는 

산업화의 첫 발을 내딛기에는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유럽 국가의 경우 기술적 발전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이전의 것들은 폐기되어야 했지만

일본은 그 당시 어느정도 체계가 잡히고 정리된 기술을 받아들여 곧바로 적용시킬 수 있었다.

예로, 가스등에서 전기등으로 전환, 증기 에너지에서 전기 에너지로의 동력의 전환은

이미 많은 돈을 들인 기존의 것을 새로운 것으로 완전히 대체하는데 큰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일본은 이러한 시간과 비용을 치루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2. 지정학적 요인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는 또한 지정학적 요인도 매우 컸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동북아시아 말단의, 그것도 섬나라라는 독특한 지정학적 환경은

외세의 침략을 배제시킴으로써 오로지 일본은 근대화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섬나라인데다 거리상으로도 엄청나게 먼 일본을

굳이 큰 희생을 치루어 점령할 이유는 없었다.

당시 유럽 열강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아프리카 및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 건설에 바빴고

미국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라 일본을 상대할만한 여력도 없었다.

한국 또한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경제발전에 올인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3. 사회적 요인




에도시대 일본은 근 200년간 전쟁이 없어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군의 대량의 인원이 군사활동에서 행정활동으로 옮겨가게 되었음은 물론

농업기술의 발달과 일본 전국 각지에서 토지개간 활동이 일어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충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1731년 에도(현재 도쿄)에는

인구가 100만에 육박했는데 당시 전세계에서 인구가 100만이었던 도시는 에도 뿐이었다.

게다가 거리 곳곳에는 서점이 즐비했는데 이는 일본의 출판 시장이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책을 통해 빠른 정보 습득이 가능했고 일본인 대부분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기존 출판시장의 흥행 덕분에 서구의 기술 문명은 일본 사회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책이란 것은 매우 귀했고 서점은 단 한 군데도 없으며 지식은 양반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다.





4. 정책적 요인




우리나라 또한 박정희 정부의 정책적 주도하에 단시간에 근대화를 이루어 낸 것과 같이 일본 또한 그러했다.

페리 제독의 무력 시위를 통한 강제 개항의 수모를 겪은 일본은 이후 유럽과 미국에 사신을 파견하고 

뛰어난 인재를 보내어 그 기술을 배우게 했다. 메이지 유신이후 본격적으로 정부 주도하에 

근대화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 시기 일본 제국대학이 탄생하게 된다.

이미 출판시장이 활성화되었기에 시민들의 문명개화 작업은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에 진입하자 서양의 문명에 쫒아가기만 하던 일본은 점차 독자적인 기술을 만들어 낼 정도가 되었다.

에도시대부터 이미 충분한 재정이 확보되었기에 일본 정부는 사회 전반의 기반시설을 만들었고

정부가 소유한 공기업을 어느정도 키운 다음 민간에게 넘겨주는 형식으로 민간기업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민간기업 중 하나가 바로 일본 내 최고의 기업인 미쓰비시 그룹의 시작이다.

일본은 당시 서양에 비해 자신들은 열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자신들을 개화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 열등감은 주변 아시아 국가들을 개화대상으로 보게끔 하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중국과 조선은 개화될 조짐이 없었기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근대화 동맹을 맺을 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했고

 일본 또한 열강들에 맞서기 위해 다른 열강과 마찬가지로 팽창주의를 택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기업은 군비를 늘려 군사력을 확장시키는데 집중하고 후일 러일전쟁에 승리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과 같은 열강의 반열에 자리하게 된다.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9 23:55

세상사 빠른 변모의 과정 속에서도

게이샤는 현대까지 약 400년의 긴 세월 동안 존속해왔어

실제로 한국 내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중에서

' 운이 좋으면 교토에서 게이샤를 만날 수 있다 ' 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지

사실 사회에 게이샤의 삶이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어

오늘날에야 여러 매체와 관심을 가져준 몇몇 인물 덕분에 비교적 베일이 조금 벗겨진 것뿐인 셈이지

그렇다면 입을 굳게 다문 그녀들의 침묵 속엔 대체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던 걸까

한때는 쇼군의 노리개로

또 한때는 사무라이들의 애첩으로

비밀과 관능의 세계에 은둔하며

일본 역사상 가장 격변의 세월을 함께한 그녀들

'게이샤(Geisha)'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발달된 국가 중 하나인 일본과 더불어 기술력을 신봉하는 일본인들

앞서 언급했듯 그들은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급속한 변화를 겪어야만 했어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긴 시간 동안 변치않는 전통이 남아있는데 바로 '게이샤'야

그녀들을 달리 표현하자면

가녀린 관습의 수호신이자 현대를 사는 고귀한 과거라고도 할 수 있지




 

게이샤들의 세계는 일반인들로부터 철저히 폐쇄되어 있으며

나아가 생활 역시 비밀과 관례에 물들어 있어

또한 그녀들은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집에 살지만

어두운 뒷골목과 밀폐된 찻집에서 생계를 꾸려가야만 해

미국 작가 아서 골든(Arthur Golden)는 바로 이 신비스러운 전통적 존재에 매료되었어

그리고 그는 10년간에 걸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게이샤의 추억(Memoir of a geisha)'을 집필해냈지




 

"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세계라는 점이 오히려 저를 매료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걸 좋아하지 않죠. "

책을 집필하기 위해 아서는 게이샤 세계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져 왔던 침묵의 맹세를 깨뜨려야만 했대

아서의 말에 따르면 그가 처음 이를 시도했을 땐

정말이지 비밀 종교집단에 침투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고 해

뭐 과장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만큼 게이샤의 삶이 어두운 곳에서 비밀리에 부쳐졌던 뜻이었을 테지




 

" 제가 만일 예전에 게이샤에 관한 질문을 받았더라면 다른 미국인들과 대답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게이샤와 창녀가 동의어가 아니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 당시엔 게이샤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진 못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젠 일본 사회에서 게이샤의 존재가 매우 특별하단 걸 알아요. "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게이샤

그녀들의 세계는 가히 우아함과 세련미가 전부이며 사랑은 한낱 냉소의 대상에 불과해

예로부터 게이샤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오로지 남성을 매혹시킬 수 있는 '외모' 뿐이었거든

덕분에 그녀들은 과거부터 선택된 소수 특권층의 지위와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의 경이롭고 신비스런 상징적 도구로서 존재해왔어




 

일반인이 게이샤와 마주친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야

하지만 일본의 옛 수도 교토(Kyoto)에서는 매년 게이샤들이 참석하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맘때쯤이면 비교적 쉽게 게이샤를 볼 수 있지

이 벚꽃축제는 일반 시민들이 가장 쉽게 일본의 전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인정받고 있어

이 축제는 흔히 '미야코 오도리(Miyako odori)'라고 불리는데

역사와 관능을 한몸에 표현하듯 화려한 기모노로 치장한 많은 게이샤들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 미모와 재능을 뽐내곤 해




이렇게 얼굴에 분칠을 하고 항상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는 게이샤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녀들도 각자 속에 힘들고 복잡한 개인사를 감추고 있기 마련이야

다만 게이샤들은 자신들의 비밀에 대해 전적인 침묵으로 일관하며

더불어 오랫동안 일본 최고 권력자들이 벌였던 음모와 배반, 권모술수를 직접 눈으로 목격해왔지

" 게이샤는 남성들의 모임에 동석하기 위해 하룻저녁 동안 고용되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었는데요.

놀랍게도 창녀와 달리 별도의 잠자리는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

서양처럼 사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일본의 특징 탓에 그녀들은 주로 대화의 매개체 역할을 한 것입니다. "



 

게이샤의 주된 임무는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서 고객들의 비밀스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이를 함구하며 절대 발설하지 않는 것이었어

비밀을 보장해주는 것뿐이라면 너무 간단해보일수있지만

엄청난 대화가 오가는 자리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때문에 분명 침묵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며

이는 현대까지 게이샤들이 존속해 올 수 있었던 일종의 비결로도 볼 수 있어




 

게이샤는 남성을 위해 전적으로 여성에 의해 운영되는 산업이기에 이들의 우두머리도 역시 여자인데

그녀들은 대모, 즉 오카미(女?) 상으로 불리며

게이샤들에게 숙식과 값비싼 기모노를 지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그 대가로 게이샤들은 고객들에게서 받은 돈에서 약간의 수고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입을 대모에게 준다




 

여느 유흥 업계의 과거사가 그러하듯

게이샤의 대모 역시 마치 포주처럼 게이샤들을 말그대로 소유하며

끝없는 채무로 자신에게 종속시켰던 시절이 있었어

당시의 대모들은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게이샤의 처녀성을 팜으로써

그녀들에게 투자한 돈을 회수하곤 했지

때문에 대모들에게 있어 이러한 조심스러운 거래를 위한 광범위한 인맥은

역시 사업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였어



 

작가 아서 골든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어

" 게이샤 하우스를 운영하는 대모에게 돈만 아는 악녀, 혹은 포주의 이미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런 인물이 많았기에 좋지 않은 꼬리표가 붙은 것이기도 하죠. "

하지만 오늘날에는 게이샤들에게 보다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대모에게도 이로운데

게이샤 하나를 키워내는데 무려 6억 원이란 거금이 소요되기 때문이야

실제로 악조건 속에서 미처 교육 과정을 버티지 못한 게이샤가

도중에 그만두기라도 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일반적으로 견습 게이샤들의 훈련 기간은 5년 정도라고 해

그럼 이쯤에서 약 3년의 훈련을 마친 견습 게이샤

요이코(Yoiko)의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고 가자

게이샤가 된 순간부터 그녀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선배 게이샤인 마메카(Mameka)를 잘 따르는 거였어

모든 견습 게이샤들에겐 각각 선배가 붙는데

그로부터 여러 세기 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통과 기술을 직접 전수받기 때문이지



 

선배 게이샤인 마메카의 삶은 슈퍼 모델과 다를 바 없는데

그녀는 12억 원이나 하는 컨트리클럽 멤버십과 개인 골프 레슨 등

생활의 모든 면에서 최고의 것들만을 보장받고 있거든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요이코에게 있어 성공한 게이샤인 선배 마메카는 선망의 대상인 셈이야

"게이샤가 된 덕분에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고 일반인들은 갈 수 없는 곳에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실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죠. "




 

사실 게이샤란 말은 원래 예술가를 의미해

모름지기 게이샤라면 대화 능력과 더불어 춤과 음악, 문학에 능통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거든

그 중에서도 게이샤가 추는 춤에는 예술을 위해 사랑을 희생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는 어찌보면 게이샤에게 엄청난 열정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지



 

실제로 이들의 훈련은 끊임없이 계속되는데

40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조차도 떠오르는 신인 게이샤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을 춤 연습에 열중한다고 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게이샤는 절대 결혼하지 않아

대신 함께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이들의 동료애는 평생을 두고 지속되지

이러한 게이샤들의 폐쇄적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성공한 단 한 명의 외부인이 있다면 바로 최초의 서양인 게이샤 '라이자 달비(Liza Dalby)'야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그녀가 처음 게이샤가 되었을 무렵

푸른 눈의 여성이 샤미센(Shamisen : 일본 현악기)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는 건

일본인들에게 있어 게이샤 역사상으로 유례없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였기에 이는 꽤나 이슈가 되었어

라이자의 게이샤 대모는 과거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지

" 물론 처음에야 서투른 것이 눈에 치일 정도였지만 라이자는 기모노를 입은 채 걷거나 무릎을 꿇고 앉는 데 곧잘 적응해나갔어요. "




그런데 애초에 그녀는 게이샤가 되기에 부족할 것 없는 배경을 갖추고 있었어

10대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라이자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소화한 것은 물론이며 게이샤들의 악기인 샤미센을 다룰 줄 알았고

사상 최초로 게이샤 관련 논문을 발표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지

물론 라이자가 직접 게이샤가 된 것은 단순히 게이샤에 대한 그녀의 열정 덕분일 테지만 말이야



 

" 게이샤들 중에서 제가 특별히 눈에 띄거나 하진 않았어요.

다만 연회에 동석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고객들이 절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잠깐! 일본인이 아니잖아! 어떻게 된 거지?' 하며 놀라곤 했죠.

다른 게이샤들은 그게 재미있었는지

그 이후 외국인 게이샤가 있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고 가만히 앉아 그 순간을 기다리곤 했어요.

서양의 옷을 입었을 때와 기모노를 입었을 때의 걷는 느낌은 정말 너무나도 달랐어요.

기모노는 다리를 바짝 죄기 때문에 잔걸음으로 걸어야 했기 때문이죠.

저는 그게 익숙하지 않았던 탓인지 곧잘 넘어지곤 했고 선배에게 혼나기 일쑤였어요.

사실 기모노를 입고 움직이는 건 저에게 새로운 신체언어를 배우는 것과 다를 바 없었죠. "



 

" 게이샤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여성은 평생 독신의 길을 선택하는 겁니다.

평범한 주부와 독신의 갈림길에서 중대한 선택을 하는 것이죠.

게이샤는 평범한 중산층이 아닌 예술인의 길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




 

게이샤의 이미지는 늘 매춘부와 혼동되어 왔어

그녀들은 창녀와 달리 직접적으로 성매매를 수단으로 하여 돈을 벌진 않았지만

실상 스스로 고객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점은 창녀와 똑같았기 때문이지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게이샤가 예술작품 자체로써 비록 숭고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더라도

밤엔 돈으로 임대되어 남성 고객들의 즐거움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거든



그렇다면 먼 옛날

천민에 그 뿌리를 두고도 긴 세월 동안 점진적인 신분 상승을 통해 결국 일본 사회 최상류층에 합류하게 된 그녀들이 400년 가까운 일본 격동의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였을까

독특한 게이샤 문화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일본의 과거를 알아야 해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세기 전인

에도 막부(Tokugwa Shogunate) 시대에서 시작되니까




 

게이샤가 처음 등장한 건 1600년대의 일이야

당시 일본은 여러 세기에 걸친 전국시대 끝에 오늘날 도쿄라 불리는 에도(Edo)의 쇼군 통치 하 강력한 집권 체제가 자리잡았지 그리고 그 이후 일본은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수백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말이야

쇼군의 권력이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어

그로 말미암아 매우 억압적이었던 쇼군 정권은 결국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따라잡지 못하고서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윤락행위 역시 국가의 통제 하에 두면서 허가된 지역에서만 가능하도록 했지




 

때문에 공인된 소수의 유곽은 도시 내 남성들의 성적 해방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수 있었어

매춘부나 고급 창녀들은 유곽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연회 속에서 사무라이와 상인들을 즐겁게 해주었지

그렇게 최초의 게이샤는 바로 이 유곽에서 탄생했어

다만 최초의 게이샤는 여성이 아닌 남성들이었는데

그들은 궁정의 어릿광대와 같은 역할을 도맡았고

창녀들이 연회를 벌이면 그곳에 동석하여 음악과 춤을 공연하거나 농담을 들려주곤 했지




 

그러던 어느날

손님이 떨어진 매춘부 하나가 최초의 여성 게이샤로 나서게 되었는데

가히 그 인기가 폭발적이었던 탓에 오래 지나지 않아 여성 게이샤의 수는 남성 게이샤의 수를 앞질렀으며

나아가 일반 매춘부들의 고객들도 모두 빼앗아 올 수 있었어

물론 처음엔 게이샤와 매춘부들 간에 상당한 경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돼

당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매춘부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점차 늘어나는 게이샤의 활동을 규제하려 애썼지만 같은 여성으로써 매춘부의 영역이었던 성매매가 게이샤에게도 좋은 돈벌이가 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덕분에 매춘부들은 점차 게이샤들로부터 밀려나게 되었어




 

하지만 그로부터 1779년

게이샤는 마침내 정식 직업으로 인정되면서

'겐반(?番)'이라고 불리는 등록소로부터 관리되었으며

이때부터 게이샤는 겐반으로부터 매춘 행위를 강력히 규제받았어

그 이유인 즉 게이샤는 처음부터 매춘부들과 경쟁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었고

따라서 정부에서 엄격한 대응에 나선 것이었지



 

겐반에서는 연회에 참석하는 게이샤에게 사람을 붙여 처음부터 끝까지 호위함으로써

이들이 매춘의 길로 새나가는 것을 방지했어

이러한 규제 때문이었을까

초창기 게이샤는 굉장히 소박하기 그지없었고

한동안은 용모가 다소 떨어지는 여성들이 주로 게이샤가 되곤 했다고 해

그럼 용모라는 다소 주관적인 요소말곤 매춘부와 게이샤를 구분짓는 특징은 무엇일까??

그에 관해선 다시 한번 아서 골든의 설명을 빌려 살펴보도록 하자




 

" 서양인들이 갖고 있는 게이샤에 대한 이미지는 1800년대 일본의 매춘부와 많이 혼동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매춘부와 게이샤는 옷차림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죠.

우선 게이샤는 '오비(帶 : 허리에 매는 띠)'를 뒤로 맵니다.

연령에 따라 길고 짧은 차인 있지만 오비는 언제나 뒤로 매듭을 짓죠.

반면 매춘부는 오비를 앞으로 매게 되어 있어요.

그 이유는 간밤에 성관계를 위해 기모노를 벗었는데 아침에 다시 입으려 하면 전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그 스스로 오비를 매야하기 때문이죠.

또한 매춘부는 머리 장식이 요란한 편인데 게이샤의 머리 스타일은 그에 비하면 훨씬 단순합니다. "




겐반을 통한 당국의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게이샤 사업은 번창했고

남성들에게 있어 매춘부와 달리 오히려 단순한 게이샤의 옷차림은 더욱 인기를 끌었어

더불어 에도 지역에서 시작한 게이샤 업계는 그렇게 일본 열도 전역으로 차차 전파되기 시작했지

그 와중에도 시기가 시기인터라 당시 일본의 쇄국 정책은 계속되었는데

해외로 도피하다 붙잡힌 자들은 가차없이 참수되었고

물 건너 온 외국인들은 인간 이하로 취급되기 일쑤였다고 해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파견된 초대 미국 영사관은 '타운센드 해리스(Townsend Harris)'였어

그는 1856년 8월 시모다(Shimoda) 만에 도착했는데

고국으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일본과 협상을 통해 최초의 무역 협정을 맺는 것이었지

당시 일본은 앞서 언급했듯 세상과 격리된 채 250년쯤 뒤처진 사회였어

쇼군 정부는 문화, 무역, 그 외 어느 분야에서도 세계에 동화되려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운센드 해리스는 끝내 그걸 바꿔 놓고자 했고 말이야

그는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저항에 부딪쳐야 했지만

다행히 끈덕진 성정 덕분에 이를 포기하지 않았어




 

타운센드 해리스에 대해서는 게이샤에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이때 일어났던 사건이야

협상 중이던 해리스가 갑자기 일본 정부에 게이샤 한 명을 요구했던 거지

외국인과의 접촉이 굉장히 조심스러웠던 상황에서 사실 이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이었어

하지만 특유의 끈질김 탓에 끝내는 오키치(お吉)라는 어린 게이샤 하나가 그에게 보내졌지

오키치는 매우 아름답고 재능이 뛰어나 촉망받던 게이샤였는데 평소 해리스가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음을 알아차린 일본인들은 오랜 설득을 통해 오키치를 보내며 내부의 정보원 노릇을 해주길 내심 바랐어



 

하지만 이러한 일본 당국의 의중은 곧 실패로 돌아갔어

오키치가 해리스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거지

그녀는 서양인과 사랑에 빠진 최초의 게이샤였던 셈이야

또한 그들의 유명한 사랑 이야기는 그로부터 한 세기 후인

" The Barbarian and the Geisha "란 작품명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어

5년에 걸친 긴 협상 끝에 마침내 무역 협정을 맺는데 성공한 해리스가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던 시간을 작중에선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오키치, 내가 원해서 떠나는 게 아니에요 "

" 미국이라니. 너무 먼 곳이예요.. "

" 당신을 잊을 만큼 먼 거리는 아니죠. "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은 그와 달리 낭만적이지 못했어

고국으로 돌아온 타운센드 해리스의 일기장에 오키치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걸로 봐서

그는 이미 오키치를 잊어버렸음이 분명했거든

버려진 오키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더러운 외국년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살아가야 했어

결국 그녀는 심한 스트레스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서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지

하지만 시모다의 게이샤들은 아직 그녀를 잊지 않고 있어

실제로 아직까지 많은 게이샤들이 해마다 오키치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장소를 찾아가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곤 한대




 

한편 해를 거듭해 250년에 걸친 억압적인 쇼군의 정책이 지속되자 사무라이들의 불만은

곧 정권 교체의 음모로까지 번지게 되었어

이때 그들의 비밀 회합장으로써 이용되었던 것이 게이샤의 찻집이었지

이처럼 적잖은 게이샤들의 도움으로부터 마침내 사무라이들은 쇼군의 통치에 막을 내리게 됨과 동시에

메이지 천황의 통치를 성공적으로 도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대정봉환(大政奉還)'이야

그리고 천황의 시대를 새롭게 여는데 일조한 게이샤들은

이로부터 비로소 일본 최고 권력집단의 비호를 받으며 최상류층에 속하게 되었지



그렇게 게이샤의 세력과 인기가 끝없이 치솟는 동안 일본은 현대 사회로 차츰 발돋움 해나갔어

서양의 기술 문명은 마침내 아시아 증기의 시대를 열었고

이 무렵쯤해서 남성들은 긴 머리를 짧게 자르며 중산모를 쓰기 시작했지

더불어 이와 같은 새로운 시대에서 게이샤는 마치 오늘날 영화배우처럼 유행의 첨단을 주도하는 계층이었어

때문인지 1900년도에 접어들자 게이샤의 수는 약 25000명으로 급격히 불어났는데

당시 그녀들은 일본 내 가장 멋진 여성들로서 모든 여자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해




 

그로부터 몇 년 뒤

야심만만했던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고

강국으로 인정받던 러시아로부터 발칸함대까지 대파하며 승리를 거두었어

그리고 러일 전쟁 종전 후 민감한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 장군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쿠로파킨(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Куропаткин)을 위해 벌어진 연회에 대해선 게이샤에 관련된 또다른 일화가 전해지지

연회에서 불려간 게이샤는 오코이(Okoi)라는 여자였는데

그녀의 춤을 감상하던 러시아 장군은 술김에 갑자기 오코이에게 두르고 있던 오비를 풀어달라 부탁했어

하지만 그녀는 이에 두말없이 딱! 잘라 거절했지

그 당찬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가쓰라 타로(桂 太?) 수상은

이후 오코이를 기꺼이 자신의 정부로 삼았다고 해




 

실로 일본 역사상 고위 권력자가 게이샤를 직접 아내로 들인 최초의 사건이었어

때문에 이것은 단순 일화라고 치부되기보다

당시의 게이샤들이 이를 계기로 그들 사회에서 최상류층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나름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지

1900년대 게이샤와 결혼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어

또다른 예로 바론 무츠(Baron Mutsu) 외무성 장관은 두 차례의 결혼 모두 게이샤와 했지

뭐 사실 남자로선 게이샤와 결혼하는 것이 딱히 나쁠 것 없었어 남자를 깍듯이 모실 줄 알았고

특유의 무거운 입 덕분에 어떠한 비밀이든 누설될 걱정없이 철저히 지켜졌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처럼 막강한 지위를 누렸던 게이샤들 역시

1920년대 현대 사회가 본격적으로 개막됨과 동시에 그 존속을 위협받기 시작했어

일본 내 재즈 시대(Jazz Age)가 도래하며 무수한 쇼걸들이 게이샤를 대신해 무대를 수놓았고

서양 문명에 목말라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이트클럽이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지




 

이제 일본 내 최고 멋쟁이들은 20년대 식 신식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었어

게이샤들에게 심각한 존폐 위기를 맞게 해 준 요소들 중

새롭게 등장한 바 호스트들은 사람들로부터 단연 인기만점이었는데

이들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남성과 동석해주었고 무엇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굉장히 현대적이었지

실로 1920년대는 게이샤들에게 있어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어

하지만 게이샤들은 생각보다 그리 당황하지 않았지

그녀들은 춤과 노래, 음악 등 그들만의 전통을 굳게 지키며 오히려 자신들을 차별화해 나갔거든

전과 달리 첨단 패션을 주도하던 것에서 벗어나 전통 예술의 수호자로 자청하고 나선 거야



게이샤의 수난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1926년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와 함께 일본은 군사 대국으로 성장했고

그에 따라 열도의 전 지역에선 국수주의 열풍이 몰아침과 동시에

서구의 문물을 부정한 것으로 취급하며 비난하기 시작했거든

덕분에 게이샤는 일본 전통문화의 일부로서 다시 한번 각광받을 수 있었어

그 결과 게이샤는 1930년대 초 그 수가 최대 약 80000여 명에 달했을 정도였으며

가히 전성기라 불릴 만한 시기를 맞이했어

게이샤가 밀집해 있던 기온(Gion)을 중심으로 일본의 옛 수도인 교토 역시 옛 영광을 되찾게 되었지



 

오늘날 교토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한번쯤 들르는 유명 관광지인 기온은

사실 일류 게이샤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야

실로 문화적 향취 가득한 교토에 비하면 도쿄는 급성장한 신도시에 불과했어

또한 1930년대는 일본 경제가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때라

게이샤들은 값비싼 기모노를 매달 한 벌씩 사 입었고
시기를 잘 타고난 갑부들은 그녀들을 열두 명씩 거느리고 꽃놀이를 다니는 게 다반사였지

당시의 돈 있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게이샤를 아낌없이 후원했던 거야




 

그러나 호시기를 누리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겐 여전히 어두운 단면이 존재했어

교토의 게이샤 수요가 급증하자 각 시골의 빈곤한 가정에서 기껏해야 여섯-일곱살 난 어린 딸들을

게이샤 하우스에 팔아넘기곤 했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기온의 게이샤가 되는 법은 아니었고

따라서 운이 정말 좋지 않은 다음에야 마치 가축인 양 팔려나간 이 소녀들이

장차 기온에서 게이샤로 자랄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어

그리고 설사 게이샤가 되었다 한들

당시 그녀들은 과거의 악독했던 대모들에게 종속된 소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그저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에서야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했지




 

우울하게도 오늘날과 달리 1930년대의 게이샤들은 스스로 그 직업을 선택한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어

더불어 수련기간 동안 게이샤 대모에게 받은 기모노와 숙식, 교육비 등의 빚을 떠안은 그녀들은

경제적 의미에서의 포로와 다름없었고 말이야

행여 도망친다 해도 결국엔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다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하니

도대체 감옥이랑 다를 게 뭐였을까

게다가 가장 비싼 값을 치르는 고객에게 게이샤의 처녀성을 파는 '미즈아게(水揚)'라는 관습도

사실 바로 이때 생겨났던 거야 대다수 어린 게이샤들이 이 충격적인 통과 의례를 치르기엔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 게이샤가 마치 전문 창녀처럼 성적인 것에 초점을 둔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기껏해야 그녀들이 첫날밤을 치르기 전 대모로부터 가만히 누워 있으라는 말을 전달받았죠. "

미즈아게는 나름 격식과 절차를 따져 치러지는데

당사자인 남성과 게이샤는 사케잔을 주고받으며 잠자리에 앞서 상대한 연회를 대접받았다고 해

" 게이샤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는 남성을 기다립니다.

아, 이때 화장을 지우진 않아요.

왜냐면 남성이 게이샤에게 키스하거나 하는 일은 실상 없기 때문이죠. (그냥 섹스하기 바쁘다는 뜻) "




 

놀랍게도 1930년대 기온에서는 사상 최고가인 무려 10억원에 미즈아게를 치른 게이샤도 있었어

하지만 이처럼 많은 금액은 대모에게 좋은 일일 뿐이었으며

사실상 오늘날까지도 게이샤에게 있어 미즈아게에 대한 지불금은 다 소용없는 것들이지

그럼 게이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

사실 게이샤가 실질적인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선 특히 돈 많은 고객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후원해 줄 수 있는 다나(Danna)를 잡아야 해

때문에 모든 게이샤들의 우선적인 목표는 괜찮은 다나를 잡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보통 다나는 원하는 게이샤의 비싼 생활비를 부담하는 대신 그 대가로 그녀를 정부로서 맞이할 수 있어




 

예전엔 대모가 다나를 직접 지정해주었기에 게이샤는 남성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게다가 관습대로라면 일단 다나가 정해지는 그 순간부터

게이샤는 여러 명의 고객을 상대한다 하더라도 성관계만큼은 평생 다나 한 사람과만 가능했지

즉 과거엔 다나를 얻는 것도 복불복이었던 셈이야




 

예나 지금이나 교토의 기온에서는 일본 최고의 게이샤들이 육성되고 있어

그 수련생들은 흔히 마이코(Maiko)라 불리는데

특히 이들이 자랑하는 빼어난 외모는 현대에 와서도 변함없을 정도라고 하지

앞서 언급했던 3년 경력의 견습 게이샤 요이코 기억나지?

요이코가 바로 기온의 마이코야

그녀는 16살 때 스스로 부모님께 게이샤가 되겠다고 말했던 그날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요이코의 말에 따르면 특히나 아버지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

하지만 결국 부모님께 자신의 의견을 피력시킨 요이코는

지금도 자신의 이름이 새긴 무명패가 붙은 게이샤 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중이야



 

요이코를 데리고 있는 대모는 적지않은 돈을 그녀에게 투자하고 있어

때문에 요이코는 대모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매일 열심히 춤과 음악, 다도 등을 배워야 해

" 모두들 '기온'은 혹독한 곳이라는 옛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예전처럼 마이코로 팔려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아버지 직장동료께서 딸을 그런 곳에 보낸다고 심한 말씀을 하셨었나 봐요. "

" 저는 마이코가 되기 전 교토에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들어왔어요.

때문에 제가 정말 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건 아닌가하고 심하게 걱정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저를 잘 보살펴 줘요.

못된 사람들을 만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아요. "




 

자 그렇다면 게이샤의 치장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우선 충분히 예상 가능하듯 게이샤의 유난히도 붉게 칠해진 입술은 오로지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거야
 



 

또한 게이샤는 얼굴을 비롯해 목덜미까지 하얗게 분칠된 다른 부분들과 달리

머리카락이 난 가장자리는 미처 화장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게 일반적인데

이는 마치 가면을 쓴 듯한 얼굴을 돋보이게 하고

더불어 관능적인 맨살을 드러내며 남자를 매료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함이지



달리 표현하자면 뭐랄까

서양에서 여성들이 다리의 맨살을 보이며 섹시미를 강조하는 것과 유사한 거야

우리야 별 생각없을 지 모르겠지만 게이샤들은 보통 가면에 가까운 분장을 하면서도 가장자리 맨살을 남김으로써 남자들로 하여금 나체를 보는 듯한 관능미를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게이샤의 재산 1호는 뭐니뭐니해도 기모노야

적어도 이름 좀 날리는 게이샤라면 기모노가 최소 스무 벌 이상은 되어야 하지

놀랍게도 어지간한 고급 비단으로 제작된 기모노는 그 값이 1000만원을 호가하는게 보통이라고 하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이 든다고 해도 게이샤는 늘 최고의 제품만을 선호하는데

이는 그녀들에게 있어 기모노 자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를 뿐만 아니라

좋지 못한 품질의 기모노를 입는 게이샤는 흔히 3류로 취급받기 때문이야

그런 탓인지 고가의 기모노를 많이 소유한 게이샤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화재야

애지중지하는 기모노들이 다 타버린다는 건 전 재산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거든



 

품질에서 나아가 게이샤들이 계절 별로 각기 다른 색의 다양한 기모노를 장만하는 것은 물론이야

새해의 시작을 상징하는 검은색 기모노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것이며

꽃이 수 놓아진 분홍색의 기모노는 여름, 단풍 무늬의 주황색 기모노는 가을, 그리고 녹색의 기모노는 겨울에 입는 것이 일반적이지

또한 게이샤는 기모노의 옷 선을 살리기 위해 속옷을 입지 않아

때문에 그냥 알몸인 상태에서 그대로 기모노를 걸치며 마지막엔 허리를 지탱해 주는 오비를 두르지

특히 견습 게이샤들은 비교적 화려한 색상의 기모노를 골라 입는데

펄럭일 정도로 긴 소매와 가슴 높이까지 올려 맨 오비는

손님들에게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해



게이샤는 머리치장에 대해서도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야

마이코의 머리 모양 역시 의상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스타일만을 고수해야 하거든

실제로 머리의 일부분은 항상 기름을 발라 핀으로 고정시키며

때때로 머리숱을 풍성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가발을 덧붙이기도 하지

게이샤들은 탈모에도 취약한 편인데 이는 항상 머리치장을 위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당기기 때문이야

그중에서도 위 사진처럼 붉은색 비단 천을 덧댄 이 머리스타일은

일명 '갈라진 복숭아(Split peach)'라고 불리는데 이는 암암리에 성적 의미를 담고 있어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확인할 수 있는 비단의 갈라진 틈은

여성의 생식기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거든

게이샤들에겐 이렇게 완성된 머리 모양을 유지하는 것도 꽤나 곤욕이야

그녀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 간격을 두고 미용실을 방문하는데 그때까지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목침을 베고 자야 하기 때문이지 나아가 게이샤들의 머리 장식은 철저히 개인 소유이며

그들에게 남의 것을 만지거나 착용하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



자 이제 게이샤의 마지막 치장인 신발을 살펴봐야지?

사실 딱히 신발은 높다란 나막신을 신는다는 사실외엔 특별할 것이 없어

뭐 굳이 게이샤들이 허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높은 나막신을 신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는 보물같은 자신의 기모노가 더러워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거야




 

게이샤들은 돈을 아끼거나 저축하는 법이 없어

사실 하는 일 자체가 외모를 단장하는데 많이 치중하기 때문에

게이샤로서 짠순이처럼 사는 삶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야

게이샤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남자 손님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능력일 거야

그 능력이라 함은 바로 견습 게이샤들에겐 아직 부족한 넓은 배려심과 즉흥적인 반응이고 말이지

견습 게이샤인 요이코의 선배로 소개했던 마메카는

손님들을 다루는 그 탁월한 능력 탓에 이미 기온에서 성공한 게이샤들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어

나아가 마메카는 이제 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한 상태로서

현재는 스스로 자신의 고객을 선택하고 자리를 예약받고 있지




 

" 마이코 시절에는 누군가의 집에서 남의 보호하에 지내야 하므로 마치 기숙사에 사는 것과 비슷해요.

물론 그것이 어려운 생활이라는 건 아니지만 사생활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죠.

또한 마이코일 때는 자신을 찾는 연회에 무조건 참석해야 하지만

독립한 후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

하지만 독립한 노련한 게이샤라고 해서 항상 단독으로 일하는 것은 아냐

오히려 그들은 게이샤 업계의 자랑스런 선배로서 종종 여러 마이코들을 대동한 채 연회에 참석하며

그들에게 최고의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하곤 하지



 

때문에 견습 게이샤들은 비록 선배를 따라 연회에 참석했다 하더라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아직 손님들 대하기에 실력이 부족하단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선배 게이샤의 말과 동작 하나하나를 새기며 이를 배우는데 온 신경을 쏟기 때문이지

그렇게 많이 보고 배울수록 더 나은 게이샤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마이코가 견습을 마치고 정식 게이샤가 되는 것은 흔히 '깃을 바꾼다'고 말해

말 그대로 정식 게이샤들은 마이코가 착용하는 붉은색 속 깃 대신 흰색 깃을 달고 다니거든

나아가 입는 기모노의 색상 역시 화려한 색에서 비교적 수수한 색상으로 변하는게 일반적인데

이는 정식 게이샤가 되면 가면처럼 하얀 분장 대신 옅은 화장만 해도 괜찮기 때문이야

앞서 소개했던 붉은 천을 덧댄 머리 모양 역시 둥글게 틀어 올린 것으로 바꾸는게 보통이지



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사실 요즘에도 일본 내에서 부부 동반 사교모임이란 그리 흔치 않아

이는 아내의 역할이란 그저 내조

좁은 의미에선 그냥 살림 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남성들이 아직 꽤 있기 때문이지

때문에 일부 남성들은 바깥 자리에서 별 죄책감없이 아내 대신 게이샤를 부르곤 해

그렇다면 일본 여성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한 예로써 게이샤를 부르는 것에 대한 모리야(Moriya) 교수 부인의 의견을 짚어보고 가자



 

" 전 제 남편이 게이샤와 어울린다는 사실이 딱히 기분 나쁘지 않아요.

밖에서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게이샤와 대화하며 풀어버리고 나면

집에 돌아올 때쯤 그이의 표정이 밝아보여서 오히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하거든요.

사실 평범한 주부와 게이샤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한 것이겠죠.

왜냐면 주부는 살림에 능숙할지 모르나 그 생활에 지쳐 자주 피곤하기에

이유없이 남편을 부루퉁히 대할 때도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게이샤에게 있어 고객은 항상 왕일 겁니다. "



 

누구든 결코 게이샤를 창녀가 아니라 단언할 순 없을 거야

그들은 돈을 통한 선택이나 의무에 의해 언제든 고객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거든

다만 일반적인 창녀에게서 기대하는 것과 달리 게이샤와의 관계는

마치 서양의 정부처럼 오래 지속되는 사이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즉 달리 말해 창녀처럼 단발적으로 몸을 파는 것이 게이샤의 주된 생계수단은 아니란 거야

오늘날엔 특히 그 차이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예전처럼 대모들이 마이코에게 미즈아게를 강요하거나

평생 남의 정부로 살아가야 한다며 강박심을 주는 일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지

하지만 다나로 불리는 일종의 후원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여전히 그 분류 범주는 애매한 것이 사실이고 때문에 이는 전적으로 판단하는 스스로의 몫일 테야




 

게이샤의 본질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앞으로도 그녀들은 일본에서 살아있는 문화로써 쭉 계승될 거야

드문 예이지만 아직까지 그 일로부터 전통적 매력을 느끼며 매료되는 여성들이 종종 있거든

게다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데 타고난 능력을 보여왔어

따라서 게이샤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써 존속하는 한

일본이란 국가는 이의 보존을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거야

물론 게이샤란 문화집단은 인공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그 미래가 매우 불확실한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야





읽어줘서 고맙다 .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9 00:59

기원전 430년 ~ 426년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전염병

아테네 역병





스파르타가 아테네에 침략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져




겁에 질린 촌락 사람들은 너도나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아테네 성벽안으로 몰려든다.



 

성벽안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쓰레기와 분뇨 등으로

도시는 순식간에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냄새를 맡고 병원균을 사람에게 옮겨줄 곤충과 쥐도 모여든다.
 




전염병이 활동하기 딱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



 

이들은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염증을 만들었고

피를 토하게 하거나 설사를 유발시킨다.




 

인간들은 열과 갈증때문에 발가벗고 물을 찾아 거리를 뛰어다니게 되고

그리곤 결국 거리에서, 신전에서, 심지어 우물속에서 고통스럽게 숨을 거둔다.




 

사람들은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점점 죽어 나갔고

전염병은 이렇게 강력하게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아테네 역병은 아테네 인구의 1/3을 죽였고

병에 걸렸다가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손가락,발가락,시력등을 잃었다.



 

전염병의 공격은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병들게 만들었다



 

아테네 역병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자,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자랑하던 아테네가 무법천지로 돌변하게 된 것

사람들은 남의 것을 훔치고, 강도나 살인까지 서슴없이 저지른다.

 



 

사람들의 생활이 이러니 군대라고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아테네 역병이 돌기전까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승리가 손에 잡힐 듯한 상황.




 

하지만 아테네역병이 아테네를 덮치면서 아테네의 국력과 전투력은 크게 저하되고

아테네의 훌륭한 군인이자 정치가인 페리클레스마저 데려가 버린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끌어가던 인물이었는데,

전염병이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닫은 셈이 된것이다.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한다.

전염병이 아테네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고

이후 스파르타가 이끄는 그리스까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사람들은 전염병이라는 무서운 존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당시 사람들의 교류범위가 좁아

고대의 전염병은 국지적인 영역에 해를 입히고는 사라지는데...

 



 

1304년대

흑사병이 창궐한다.



 

흑사병은 몽골이 유럽을 침략했을 때 쯤 그 활약을 시작한다.

흑사병은 먼저 몽골군에게 붙어 있다가,전쟁중에 유럽인들에게로 옮겨붙는다.




 

당시 몽골군은 크림반도의 카파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공격방법의 하나로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성 안으로 던져 넣는다.





흑사병은 재빠르게 유럽인들에게 옮겨갔고​​​​​​


때마침 카파성안에 제노바에서 온 상인들이 배를 타고 돌아가면서

흑사병을 전 유럽에 퍼뜨린다.




 

배가 정박했던 도시마다 흑사병이 창궐해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전염병을 피해 항구도시를 떠나는 사람을 따라 전염병은 내륙으로 활동범위를 넓혀

그렇게 흑사병은 유럽전역을 휩쓸면서 유럽인구의 절반가량을 죽여버린다.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에게 기도했지만

교회는 흑사병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경건한 사람도 죄인만큼 죽었고,

촉망받던 성직자들도 흑사병에 걸려 죽으면서 교회의 권위는 크게 떨어진다.

 



 

또한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노동력이 귀해지면서

중세 봉건제도도 무너지게 된다.

교회가 이끌어 가던 중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것.




 

이처럼 중세에 들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전염병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못했다.

교회가 이끌어 가던 시대였던 만큼 전염병을 멈춰달라고 신에게 열심히 빌었을 뿐.




 

전쟁과 교류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중세시대 때부터 전염병이 미치는 범위는 확대되고

흑사병은 유럽대륙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세 대륙은 흑사병을 거치면서

이후 서로의 질병에 어느정도의 면역력을 갖게 되는데...

-2부계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3 02:20

흑사병보다 더 큰 피해를 낸 전염병.



흑사병으로 봉건제가 무너진후 서양은

강력한 왕이 나라를 지배하는 절대왕정 시대를 맞이한다.

유럽국가들은 돈이 되는 향신료 무역에 참가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신항로 개척에 열을 올린다.




그 과정에서 에스파냐의 지원을 받은 탐험가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뒤따라 수많은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전염병도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다



 

그중 가장 강력한 전염병은 바로 천연두

신대륙 발견전에 유럽에서는 천연두가 한동안 유행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천연두에 어느정도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와 교류가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천연두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

천연두를 가볍게 앓고 있던 유럽인 탐험가나 군인을 통해

병원균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로 옮겨가자 원주민들은 셀 수 없이 죽어 나간다.




 

천연두가 활약하면서 1억 명으로 추정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90%가 죽었다.

이는 흑사병보다도 더 큰 활약으로 천연두는 전염병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된다.

천연두의 습격은 원주민들에게 실로 파괴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천연두 때문에 원주민이 다 죽은후 신대륙에 도착한 한 영국인이

'신이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땅을 청소해 주셨다'라고 말을 할 정도

 




천연두가 아니었다면 유럽은 신대륙을 쉽게 점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근대 전기의 전염병은

신대륙 발견과 천연두로 인해 규모가 전 지구적으로 넓어졌다.

이제 전 세계는 서로의 질병을 공유하고 함께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은 전염병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래서 전염병의 전파 범위가 넓어지면 그 파괴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1800년대 사람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공장이라는걸 짓고 석탄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들었고, 공장 폐수와 생활쓰레기로 환경이 더러워졌다.





또다시 인간들이 전염병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준 것



 

이때 바로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되는 콜레라가 등장한다.

사실 콜레라는 아주 옛날에 활발히 활동했던 전염병으로,

이때는 인도의 풍토병으로 거의 힘을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영국이 인도로 진출하면서 콜레라가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콜레라는 낯선 사람들의 몸속으로 침투했고

식민지 정복전쟁과 무역 등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간다.




 

하지만 이런 콜레라한테도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깨끗한 물에서는 살 수 없다는것

위생만 신경쓴다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전염병이다




 

하지만 산업화된 도시들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거리에 쌓인 오물과 생활하수가 결국 땅으로 스며들거나 강으로 흘러들었고,

사람들은 강물을 끌어다, 혹은 더러운 우물 물을 길어 마셔

한명의 콜레라 환자가 생기면 그의 배설물이 상수원으로 퍼졌고

다시 그물을 다른 사람들이 마시면서 콜레라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콜레라는 구토와 설사를 일으켜서 몸안의 수분을 다 빼앗아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전염병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인간들은 전염병을 극복하려고 뭔가 시도해 보기 시작한다.




 

에드윈 채드윅의 도시를 청소해서 콜레라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에 따라

영국에는 공공의료법이 만들어졌고

도시청소를 시작해서 훗날 콜레라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




 

또한 존 스노는 오염된 식수가 콜레라의 원임임을 밝혀내고

영국에서는 체계적인 상하수도 시설을 만든다.

도시를 청소하고, 식수를 철저하게 정화시키면서 콜레라를 제압하기 시작.




 

또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미국도 영국을 따르면서 그 결과,

1890년대에 콜레라가 다시 많은 나라를 덮쳤을때 유럽과 미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염병이 인간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근대 후기의 전염병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1865년 프랑스의 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는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세균이라 부르며

세균이 전염병을 일으키는 것을 증명해 냈다.

 



 

1882년에는 독일의 미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미생물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시험하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콜레라를 일으키는 미생물의 정체도 밝혀냈다.




 

이후 수십년을 지나며 연구자들은

전염병의 원인, 전파 방식, 예방, 치료등에 관한 주요 발견들을 거의 해마다 쏟아냈다.

이렇게 전염병의 신비를 하나둘씩 풀어나가면서 현대의학은 눈부시게 발달한다.



1969년, 감염에 대한 개념을 발견한 지 약 100년 만에

미국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는 선언한다.

"전염병 질병은 이제 대부분 끝이 보인다."




 

인간들은 백신과 항생제를 이용해서

천연두, 결핵, 콜레라 같은 전염병들을 잘 막아냈고

사람들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음을 굳혀가던 그때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나타난다.

 



 

자연을 더 많이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아프리카 밀림을 벌목하면서 밀림에 살던 원숭이와 접촉하게 되었고,

그때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




 

또 사람들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사로잡혀

제 1차 세계대전 중 병영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을 간과하기도 했다.




 

인간들은 최근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에스키모 시체를 연구해

스페인 독감이 조류독감의 변종이라고 밝혀낸다.

조류독감은 인간이 조류의 생활 공간을 위협하면서 접촉하게 되자,

조류의 독감이 인간에게로 옮은 것




 

2003년 여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사스도 야생 사향고양이를 요리해 이용하면서 생긴 병

인간이 탐욕을 채우려고 자연을 훼손하고 이용하려고 하는 한,

전염병은 결코 정복되지 않는다.

 



 

게다가 새로운 변종 전염병이 생기거나

사스가 항공기를 타고 일주일 안에 전 세계로 확산된 것처럼,

전염병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빠른 교통수단을 타고 확산된다면.

이래도 과연 인간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을까 ?

 



 

현대에 들어서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신종 전염병들은 약도 안 듣도록 독해졌고, 더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치료제가 개발되고

철저한 검역과 격리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신종 전염병의 확산을 억제하고 있다.

 



 

그 성과로 현대의 전염병은 과거의 흑사병이나 천연두처럼

세계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

현대의 전염병은 분명 독해졌지만, 인류는 전염병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完-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3 02:17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0 22:52



>> 예전에도 한번 올라온 글인데 다시 한번 정리해서 올려봄 <<


15년도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의대의 생물통계학자 크리스티안 토마세티(Christian Tomasetti)와

종양학자 베르트 보겔슈타인(Bert Vogelstein) 교수가

<사이언스>지에서 암의 대부분은 세포분열 과정에서 재수없음 걸린다고 발표하자 

멘탈깨진 WHO와 네이처지에서 환경적요인을 너무 과소평가 한다고 반박함

17년도에 <사이언스>지에서 다시 환경적요인도 중요하지만 

그냥 암은 운빨은 팩트라고 다시 반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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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국제암연구소에 등록된 69개국(인구 48억명)의 17종 암 자료와 줄기세포 자료를 분석해

암 발생 위험과 줄기세포 분화 횟수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니,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환경 조건이 다른 국가간 상관계수 차이가 거의 없어 암 발생에 환경보다는

DNA 복제 과정의 무작위 오류가 더 큰 원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세포분열을 많이 할 수록 당연히 돌연변이가 나올 확률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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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

돌연변이가 하필 세포의 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축적되면서

세포가 끊임없이 증식해 주위 조직을 침범하고 전이되는 것이 바로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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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생에 걸쳐 나타나는 세포분열 횟수는 조직 부위별로 다르다.

둘째, 세포분열이 자주 일어나는 조직 부위에선 세포 복제 과정에서 무작위적 오류와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그래서 그중에 암세포가 출현할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셋째, 조직 부위별로 세포분열 횟수와 암 위험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strong correlation)’가 나타났으며, 이는 세포의 무작위 돌연변이가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보다 더 중요하게 암 위험에 기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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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남성>



 


존스홉킨스대의 크리스티안 토마세티 박사 등 연구팀은 32종의 암 게놈 염기서열과 역학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돌연변이의 3분의 2는 정상세포가 분열할 때 우연히 생기는 디엔에이 복제의 무작위 오류 때문임을 밝혀냈다.

환경에 의한 것이 29%, 유전적 요인이 5%, 무작위 오류에 의한 것이 66%였다




그렇다고 막 살라는것이 아니고  

조기검진이 중요하며 환경적 요인 또한 중요함 

유전적 요인은 암에 관해서는 미미함 


폐암의 경우 발암 유전자 돌연변이가 DNA 복제 무작위 오류에 의한 비중이 35%

췌장암은 77%,

뇌암·골수암·전립선암 등은 95% 까지 치솟음 


특히 폐암은 환경적요인이 훨씬 큼







한국인 1/3이 암으로 죽는다 

암으로 죽으면 다행이지

주변정리하고 야동도 지우고 돈 있으면 투병생활 하거나 

스위스가서 안락사받을수도 있고 


심장/뇌 혈관질환은 ㄹㅇ 스위치 꺼지듯이 아무것도 못하고 죽임당하는 거임 

치매 걸리면 똥지리다 죽는거고 

교통사고 나면 즙되서 죽는거고 

암으로 죽는것도 그나마 다행인거 같음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10.20 22:50



 






1. 부베 섬 (Bouvet island)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섬으로 유명한 곳임
면적은 49 km2으로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무인도임
지도에서 보듯 남극과 가깝고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둘다 멀리 떨어져있음
또 해안이 거의 절벽이라 선박으로 진입할 수 없고 헬기타서 들어가야 함
식물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주로 새, 펭귄, 바다표범이 서식하고 있음
특이하게도 노르웨이 땅인데 북반구에 위치한 본토와 무려 12,500 km나 떨어져있음
지구 직경이 약 12,000 km인걸 생각하면 어마무시한 거리임
말 그대로 지상 최악의 벽지중의 벽지임





이 섬에는 작은 컨테이너 몇 개뿐인 노르웨이 연구소가 유일한 인공건축물임
주로 기상학, 생명과학을 담당한다고 하더라






 

 

 



 




2. 베르호얀스크(Verkhoyansk)

러시아 시베리아 한복판에 위치한 애미터지게 추운 도시임
여기는 사람이 사는게 신기할정도로 존나게 추운 도시인데 역사상 최저기온은 -69.8℃를 기록했고 1월 평균기온이 -45.9℃임
근데 이름만 도시지 겨우 1,300명만 살고 있는 촌락임
특이하게도 여름이 더운데 7월 평균 기온이 23.1℃임
시베리아 치곤 여름엔 따뜻한 편인듯







 






3. 노바야 제믈랴 (Novaya Zemlya)

러시아 북극해에 위치한 존나 추운 군도임
전체 면적은 90,650 km²으로 남한의 0.9배 정도의 크기라 보면 됨
근데 이 섬들이 얼마나 척박하면 남한만한 면적에서 사는 사람은 고작 2,429명이고 그것도 대부분이 남쪽 끝자락 작은 마을에 사는 거임.......






하도 척박하고 사람도 안살아서 그런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핵실험인 차르봄바 투하도 여기서 이루어짐
기온은 최한월 -14.1℃로 그렇게 못 살 정도는 아닌듯? 근데 땅이 척박하고 건조하니깐 인간이 거주할만한 곳은 아님






 

 




4. 미드웨이 환초(Midway Atoll)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미국의 씹오지 섬임
전체 면적은 고작 해봐야 6.2㎢로 존나 작음
여긴 미국령 군소 제도라서 일반인 출입은 거의 불가능하고 시설 관리 직원 40~60명 정도만 거주하고 있음




게이들도 알다시피 2차 대전 미드웨이 해전으로 유명한 곳임
해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설명 못해준 점 양해바랄게





 

 

 

 

 




5. 다이오메드 제도 (Diomede islands)

미국 알래스카, 러시아의 정 가운데에 위치한 베링 해협의 섬들임
두 섬 사이로 날짜변경선이 지나서 러시아쪽 섬에서는 반대편 미국이 바로 어제임
서로 약 3.7km 떨어져있음
러시아쪽 대 다이오메드 섬에는 연구시설과 국경수비대가 주둔중이고, 미국쪽 소 다이오메드 섬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음
두 섬 포함 베링 해협을 연결하자는 교량 건설이 제안되었는데 좆같은 날씨때문에 무산되었다 하더라
여기 바다가 얼마나 추운지 빠져서 익사하는 것보다 추워서 뒤지는게 더 빠르다고 함






 

 

 

 




6. 다리엔 갭 (Darien Gap)

중남미 파나마에 위치한 극한의 정글 오지임
얼마나 위험한 곳이나면 열대우림과 늪지대가 갖고 있은 각종 위험한 벌레, 뱀, 포식동물과 짜증나는 더위 등 개좆같은 특징은 모두 갖고 있고
유일하게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곳이라서 걸어서 가야 함
저 빽빽한 숲 보이지? 반대쪽 나라고 건너갈려면 각종 위험을 무릅쓰고 걸어가야 함
그리고 여기서 사고 나도 여행자 보험이 적용 안되서 본인손해임
또 존나게 위험한 요소가 더 있는데, 여기에는 게릴라 반군들이 활동하고 있고, 마약 카르텔도 곳곳에 있기 때문에 건너서 멀쩡히 나올 확률이 낮음
워낙 위험해서 파나마 정부도 손놓고 있는 곳임 






 

 

 






7. 전라남도 신안군

여긴 다른 의미로 극한의 오지라 할 수 있음
인구도 40,800명으로 상당히 많은 편이며 군데군데 섬들로 이루어 졌지만 교통인프라가 발달해서 섬끼리 몇 시간이면 쉽게 이동할 수 있음
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라 의심이 될 정도로 인신매매가 악명높게 이루어지고 있고 이곳에 놀러간 몇몇 관광객이나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음
일단 이 섬에 갇히게 되면 평생 죽을때까지 노예로 노동을 해야 하며, 임금을 받을 수 없다고 함
섬사람들이 주는 적은 밥만을 먹고 살아야 하고 외부와의 연락이 전혀 가능하지 않아 그야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극한의 오지임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도 섬사람과 한 패라 신고를 해도 뒤에서 서류를 분쇄기에 넣을 뿐임
사실상 이곳 근처를 지나치지 않는게 최선의 예방책이자 해결책임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09.23 00:35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왕조가 존재하는 나라, 왕국의 대표적인 국가 " 영국 "

 

그 오랜 역사 속에서도 영국의 최전성기는  

 


 

하노버 왕조의 빅토리아 시대였다.

 

 

 


 

산업혁명으로  경제적인 발전히 급속히 이루어졌고

 

 

 


 

레드코트가 상징인 대영제국의 군인들이 세계의 바다를 제패.

 

세계에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하며  " 해가지지 않는 나라" 라고 불리게 됐다.

 


 

몽골제국을 제치고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나라.   대영제국.

 

 


 

한마디로  영국인들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전성기를 누리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독일 베토벤

 


오스트리아 모짜르트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폴란드 쇼팽

 


헝가리 리스트

 


이탈리아 베르디

 


프랑스 포레

 

 


 

이렇듯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유럽의 국가들마다 한명씩은 있었던 셈.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국가인 대영제국에서는 

 

거의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한 작곡가가 1700년부터 1900년 까지 한번도 배출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영국인들은 이 사실을 매우 당혹스러워 할 정도였다

 

 


 

콧대높은 영국인들이 자존심을 팍팍 구기고 있던 상황.

 

마침내 1857년, 영국에서 드디어

 

훗날 유명해질 작곡가가 탄생하게 된다.

 


 

그의 작곡가의 이름은  " 에드워드 엘가 "

 

 

 

 

 

 

 

잉글랜드 우스터 지방의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매우 긴 무명생활을 거쳤다.

 

 

어렸을떄에는

 

피아노 조율사 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가난한 청년시기에는,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9살 연상의 귀족의 딸인 엘리스가 그의 제자로 들어왔고 

 

상류계급이었던 그녀와 엘가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엘리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 엘가는 아내 덕분에 상류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그는 상류사회 속에서 시골 출신인걸 감추고 싶어해 항상 양복을 입고 다녔고

 

말투까지 고쳤다. (영국은 계급별로 용어에 조금씩 차이가 있음)

 

 

그리고

 

 

그의 음악에는 유독 '품위있게' 라는 지시가 많다고 한다.

 

 

아내를 사랑한 엘가는 결혼 이후 

 

아내를 위한 곡을 만드는데 

 

 

 

 

그 곡이 바로 '사랑의 인사' 이다.

 

 

 

아내의 내조에 힘입어 엘가는 결혼 이후 많은 히트 곡들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40세가 넘어서야 빛을 보기 시작한 엘가는 

 

수수께끼 변주곡, 사랑의 인사 등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엘가는 영국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쓰일 목적으로 5곡으로 구성된

 

"pomp and circumstance marches" 라는 노래를 만든다.

 

 

 

그 5곡 중 가장 유명한 1번 곡이 바로 

 

엘가가 죽을때까지 편안한 삶을 누리게 해준 곡

 

 

 

 

우리가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알고 있는 그 곡이다.

 

(유명한 부분은 1분 55초 부터)

 

 

 

 

20세기 초, 발표된 이 곡은

 

17~20세기 초 대영제국의 자부심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주는 곡으로

 

그 대영제국 군대의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를 표현한 곡이다

 


 

엘가는 이 곡을 쓰고나서,  " 이 곡은 내 일생에 단 한번 밖에 나올 수 없는 곡 " 이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엘가는 이 한 곡으로 만년까지 국왕의 총애와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이 곡에 감명받은 에드워드 7세가 가사를 붙여 

 

지금은 제 2의 영국 애국가처럼 쓰이고 있다.

 

 

또한 '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도 항상 나오는음악이다.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09.17 23:21

왜 과천 디즈니랜드,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망했는지 알아보자

 


신세계 화성 국제테마파크 조감도 

안녕 게이들 이번에 다룰 정보글은 
바로 한국의 테마파크 산업에 관한 부분인데 
원래는 경기도 화성 송산그린시티에 세워질 
신세계 그룹과 정용진 부회장의 야심작
화성 국제테마파크 (가칭)에 대해 다뤄볼까 했는데 
그에 앞서 이 부지에 들어서기로 했던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왜 무산됐는지 
더불어 과천 디즈니랜드도 왜 엎어졌는지 
종합적으로 다뤄보기로 함 
그런 다음 신세계 그룹이 추진하는 
화성 국제테마파크에 대한 정보글은 
다음에 다뤄보기로 함 


출처 MBC 무한도전



이 2개의 다국적 테마파크 사업이 
무산된 이유는 복합적 요소들이 있음 
물론 결정적인 1~2개 원인이 있긴하지만 
여러가지 요인들이 겹치다보니 
이 모양 이꼴이 난건데 
따지고보면 이 2개 사업만 그런게 절대아님 
다른 대규모 건설사업도 엎어진 경우가 
태반인데 왜 그런지 다뤄보기로함 


# 과천 디즈니랜드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 


 

 


MBC 뉴스 (위) 
YTN 뉴스 (아래) 


이 2개 사업의 경우 모두
당시 우파성향 지방정부의 역점사업이였음 
이 2개 다국적 테마파크를 도입해서 
한국의 수도권 (경인권)을 
글로벌 랜드마크화 하자는게 골자였는데 




과천 디즈니랜드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공약으로 
2002년부터 유치노력이 본격화되어 
2004 - 2006년만해도 유력했다 알려지며 
서울시 관할인 과천 서울대공원 부지가 선정됨 
그래서 3년에 걸쳐 실사까지 받은걸로 알려짐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김문수 경기지사의 악착같은 (?) 유치전에 
힘입어 실제로 사업이 진행됐고 
MOU까지 체결되며 본격화됐으며 
2010년엔 롯데그룹까지 개발에 참여함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군침흘렸던 한국의 수도권 




 

 






뭐 이를 폄하하려는 좌파들은 
좁아터진 땅덩어리에 
뭐 뜯어먹을게 있다고 오냐고 했는데 ㄴㄴ 
사실 한국이 수도권만 따져놓고보면 
메가시티임 (인구 1000만이 넘는 도시나 
생활권을 메가시티라 함) 
인구만 2500만이 넘게 살고있으며 
(현재는 2551만이라고함) 
그리고 그 추세가 2045년에도 
이어진다 전해지며
아무리 한국 인구가 줄어도 
지방인구가 대폭 감소하는거지 
아마 지금 수도권에 거주하는 
2030 일게이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좁아터진 수도권에서 지금처럼
미어터지면 살 가능성이 높음 
(이 좁은 땅덩어리에 2500만이 몰려살아봐) 

외국인 관광객만 해도 2005년 이후 
급상승하면서 서울기준으로 1000만을 
넘긴지 오래임 (작년엔 서울만 1200만이라고함) 


 


연합뉴스 TV 

그래서 한국의 서울만 따지고보면 
이미 글로벌 관광도시임 
외국인 관광객이나 지출규모만 
따지고보면 세계 10위안엔 들곤함 
(근데 지방으로 가는 외국인 관광객은 
좆도 없으니까 전체 평균내면 
한국이 세계 20위권으로 확 밀림 
외국인들도 서울이나 수도권만 보고 가는게
10에 7~8명이니까) 

그래서 서울시나 경기도 관계자들은 
수도권만 따져놓고보면 
3500만 생활권이다 
(인구 2500 + 외국인 관광객 1000) 
조만간 4000만 될꺼다 호언장담들 하는데 





그래서 한국의 서울등 수도권의 경우
인구나 경제, 시장규모만 따져놓고보면 
거대하고 매력적인 시장이긴함 
(소득이나 생활수준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고) 


 


신세계 화성 국제테마파크 (위) 
CJ 고양 라이브시티 (아래)
 

그래서 다국적 기업이나 자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기업들도 주로 몰빵해서 
투자하는데가 한국의 수도권임 

여기서 빼먹을 게 많으니까 

 



 



그러다보니 툭하면 조중동같은 유력지나 
한경같은 경제지들, 우파 학계에서 
어차피 한국에서 가능성높은데는 
수도권밖에 없으니 과감하게 수도권 규제완화하고 
수도권을 키우자 주장하는
한국에선 수도권이 가장 가능성 높으니 
몰빵해서 밀어주고 전체 파이를 키우자 이런 주장임 
이 부분은 뒤에 가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그렇다면 이쯤되서 아니 이렇게 매력적인 시장인데 
왜 다국적 테마파크 사업은 엎어졌냐 물을텐데 


# 토지보상과 부동산 투기광풍 
    그로 인한 토지확보 난항 
    사업비용부담 증가 



MBN 뉴스 

첫번째는 바로 토지와 부동산에 관한 문제임 
초딩도 아는 상식이지만 
부동산이나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건 
부지 매입이고 그 부지를 확보하려면 
토지 보상등을 해야하는데 사실 이런 1단계에서 
난항을 겪고 사업이 엎어지는 경우가 많음 

그리고 위에 언급했지만 
한국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고 
돈이 몰리는 지역은 수도권인데 
다들 알겠지만 수도권은 땅값이 비싸고  
그러다보니 대규모 부지확보가 존나 힘듬 

(어떤 사람들은 철없이 땅값때문에 그래? 
땅값 싼 지방에다 지으면 되잖아 그러는데 ...
지방에다 지어버림 백퍼 망함) 




기사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277&aid=0003112650

단적인 사례가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당시 토지 소유주인 수자원공사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개발에 참여한 롯데가 
이 토지보상 가지고 엄청난 힘겨루기를 함 
수자원공사는 ㅅㅂ 아무리 그래도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인데 1조는 달라 
롯데는 아니 ㅅㅂ 깡촌이고 
이거 개발시켜주는 것만해도 어딘데 
1조? 미친 놈들아 1500억만 받아라 
이러고 치고박고 싸우다 
보다못한 경기도나 김문수 지사가 나서 
간신히 중재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또 싸우고 그러다 6년이란 시간을 보내버림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망가진 원인의 가장 큰 장본인은 
바로 이 토지확보가 관련된 소모전임 


 

 

 


SBS 뉴스 (위) 
MBC 아침뉴스 (중간) 
MBC 뉴스데스크 (아래) 


그리고 많이들 알겠지만
뭐 다른나라도 그런 경향이 있긴하지만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무슨 대규모 신도시나 개발사업이나 건설이 
이뤄진다하면 부동산 투기광풍이 부는데 
물론 자본주의에서 개인이 
본인의 경제적 권리를 위해 
투자를 하는건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일이나 
문제는 이게 지나쳐서
전체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함 
그래서 우파든 좌파든 정부는 
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는게 
그러한 맥락임 땅값이 노무 천정부지로 치솟다보면 
아예 그 사업자체가 엎어지게 되거든 

가령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지을 땅이 확보됐다치자 그런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님 
놀이공원만 짓고 끝날게 아니잖음 
그 인근에다도 부대시설등등 짓고 해야하는데 
투기꾼들이나 기획부동산이 몰려와 난장질하고 놀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사업비용이 치솟는 부담이 있음 
(물론 이런 경우 토지를 확보한 기업입장에선 
땅값이 치솟으니 좋은거 아니냐 할텐데 
그걸 개인처럼 팔아버리고 손털 것도 아니고 
대규모로 지으려면 부담이 심해지지) 




지금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 무산되고 
신세계 그룹이 주도하는 화성 국제테마파크만해도 
인근 지역에 투기꾼들이나 기획부동산이 
난장질을 쳐놓으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데 




그러다보니 역대정부는 우파나 좌우 막론하고 
이러한 대규모 개발이나 건설사업등에 있어 
투기와의 전쟁을 펼치고 있는데 이게 참 난감함 
그렇다고 과거 고도성장기 시절 
박정희 전두환 정부때처럼 강도높은 규제나 조치등은 
오늘날 적용하기 힘듬. 당장 개인의 경제적 권리나 
자유 침해라며 행정이나 위헌소송 등이 
쏟아져나오기 십상임 (그래서 실제 박정희 전두환 정부시절 
법률이나 규제등이 그런 이유로 없어지기도 했고) 


# 수도권 규제완화 논란 
 
   이념, 정파보다 무서운 
    수도권 VS 비수도권 갈등 

   


우리나라는 전두환 정부시절인 
1983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하면서 
강도높은 수도권 규제를 해오고있는데 
왜냐면 노무 수도권으로만 
인구가 몰리고 산업이나 경제가 
집중화되는 양상이 벌어지면서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미어터져 골치아프고 
지방은 지방대로 텅텅 비게되어 굶어죽겠고 
그걸 막자고 이렇게 한건데 
이게 그 당시엔 필요한 해법이고 조치였음 



SBS 8시뉴스 (위) 

하지만 1980년대 대한민국과 
2000년대 2010년대 대한민국은 노무나도 다름 
특히나 계속 언급한 것처럼 
한국에서 사람과 돈이 가장 몰리고 
다국적 기업과 자본, 한국의 대기업들이 
군침흘리는 지역은 바로 수도권임 

예를 들어 설명하면 대형마트가 의무휴업한다고 
재래시장 가는거 절대 아니잖음 
오히려 소비자들만 불편한거지 
서울이나 수도권 못오게 막는다고 
다국적 기업이나 자본, 대기업들이 
지방으로 갈까? 솔까 ㄴㄴ 임 

한국에서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고 
빼먹으려면 수도권만한데가 없음 
인구 2500만이 넘고 외국인 관광객 1000만이 
넘는 지역이 한국에 없잖음 
그렇다면 차라리 수도권에 들어오게해서 
전체 파이를 키우면 이득인데 
이에 관해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일어남 



MBC 뉴스 

그러다보니 이 문제로
수도권 VS 비수도권 갈등이 엄청난데 
여기엔 이념, 정파가 따로 없음 
특히 수도권 규제완화를 지지하는 
우파 진영조차 수도권 VS 비수도권을 갈려 
치열하게 대립구도로 펼쳐지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 VS 이완구 충남도지사의 갈등임 
두 양반이 정말 박터지게 싸웠는데 




많이들 알겠지만 갓카 자체가 서울시장이시고 
친이계 (혹은 비박계)는 대부분 수도권 출신임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조중동이나 문화일보, 한국경제같은 
우파 유력지나 경제지들도 
수도권 규제완화를 강력히 주장하는데 
그러다보니 수도권 규제완화조치를 취했는데 



문제는 영남이나 충청지역 
우파 정치인들이나 진영 입장에서는 
본인들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보니 예민함 
ㅅㅂ 대한민국에 수도권만 있냐 
수도권 규제 완화하면 
당장 돈과 사람이 수도권으로 몰리고 
지방은 죽으란 소리냐 난리가 남 


 



정말 이 문제는 참 골치가 아픔 
이념, 정파, 지역을 떠나서 
수도권 VS 비수도권으로 갈려 대판 싸움 
그러다보니 골 터지는 일임 



MBC 뉴스데스크 

게다가 2000년대부터 일명 서울공화국
수도권 공화국 프레임이 강력하게 
대두되기 시작하는데 이건 즉 
서울이나 수도권은 살기좋고 우대받는데 
지방은 살기 나쁘고 차별받는 의미로 


 



그러다보니 성별을 떠나 커뮤니티만 가봐도 
지방에 거주하는 유저들을 중심으로 
이 서울 (수도권) 공화국 프레임이 나오는데 
당장 일베만 해도 서울 공화국 프레임을 
가진 게이들이 많고 그에 따른 일베글들도 많음
뭐 서울은 알바자리가 많은데 
지방은 없다. 서울은 종합병원이 많은데 
지방은 없다 뭐 이런 류 글들인데 
사실 솔직히 난 그런 프레임자체엔 
동의하진않음. 물론 지방이 겪는 불편함은 
깊이 인정하고 개선해야 한다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수도권이 대한민국의 중심이고 
가장 인구가 몰린 지역이니 
그에 따른 자본이나 산업, 인구의 집중은 
불가피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 




요즘 지역균형발전이나 낙후된 도시재생가지고 
학계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음 
주로 좌파성향 학자들은 다같이 잘살자고 
우파성향 학자들은 가능성있는 지역은 살려서 
전체 파이를 키우고 죽을 지방은 죽이자 주장하는데 



KBS뉴스 

난 솔까 여기에 강력 동의함
가능성없는 인구소멸이 
예정되어있는 지방의 일부지역들을 
(뭐 전라도라든지 강원도 일부지역 있잖음) 
굳이 살린다고 예산 쏟아붓느니 
아예 포기하고 그 예산을 가능성있는 지역에 
투입해야한다고 생각함
가령 수도권은 과감히 규제를 풀고
부산, 울산, 대구, 포항 대전, 세종
이런 식으로 가능성높은 거점도시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한다고 생각함 
과감하게 버릴 자식은 버려버리고 
그렇게 아낀돈은 가능성있는 자식한테 
써야지 집안 전체로 보면 이득인거니까 



MBC 뉴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 당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과천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해야한다고 뛰어다닐때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제는 지방화 시대니 
지역균형발전이니해서 
(좌파적 특성에 맞게) 수도권 규제완화에 소극적이고 
오히려 지방에 공공기관 이전이나 
대규모 혁신도시, 기업도시 개발에 한창이였음 
(난 이 노무현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이 
대한민국을 망치는 요소라고 생각함 
차라리 그 재원을 가지고 수도권이나 
영남이나 충청권 거점도시나 과감하게 
투자했다면 더 좋을것이라 생각함) 



아마 다음 총선때도 이걸로 재미볼거임 
좌파 특징이 분열과 이간질이라 
대립구도 만들어서 쌈박질 부추기는걸 좋아함 
내년 총선때 서울은 강남 VS 강북로 가르고 
대한민국은 수도권 VS 비수도권으로 가르겠지 


그런 와중에 수도권에
대규모 테마파크가 들어온다는게 
결코 좋은 소식일리 없었고 
그렇다고 안된다고 하면 
개욕을 쳐먹을 테니 뒷짐만 지고 있었다함 


하면 좋은 일이지만 규제는 안풀어줘 
서울시 니들이 알아서 잘해봐 .. 뭐 이런 입장 


 


기사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0379174

그래서 당시 오세훈 시장시절 서울시나 
동아일보등 유력지에선 
노무현 정부를 거세게 비판하고 나섬 
아니 그린벨트좀 풀어주든가 
과감하게 규제나 제한을 풀어줘야하는데 
그런걸 안해주니 유치성사가 노무 힘들단 소리지 




물론 한경오나 프레시안같은 
좌파언론들은 갓카의 대권놀음이다 
저렇게되면 수도권 집중화가 가속화된다며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냄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강력 추진하던 
김문수 경기지사같은 경우는 
별명이 수도권 규제 철폐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강도높게 수도권 규제완화 혹은 폐지를 외치고 다님 
그래서 지방민들에게 반감이 컸는데 



YTN 뉴스 

대구가 우파의 심장이고 
대구의 강남격인 대구 수성구에서 
김부겸 후보에 엄청난 격차로 밀린 이유도 
저런 수도권 규제에 관한 행보때문이란 분석이 많음 
실제로 김문수 지사도 존나 힘들었다함 
대구 수성갑 내 지역 유지들조차 
수도권 규제 때문에 불만을 품고 
김부겸 후보를 밀어줬다니까 
(난 개인적으로 김문수 지사께서 왜 
쌩뚱맞게 대구가셨나 모르겠음 
차라리 경기도에서 출마했음 가능성 높은데 참...
아무튼 이 정도로 수도권 규제는 예민한 문제임) 





기사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3751316


아무튼 과천 디즈니 랜드나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여러가지 요인이 크지만 
수도권 규제에 관한 논란도 심각했다함 
그린벨트 풀어주고 과감하게 규제도 없애줘야하는데 

심지어 같은 우파정당안에서도 
비수도권 의원들이 쌍심지켜고
반대하는데 될리가 없지 
(그래서 경제적 자유가치를 중시하는
우파인사들중에서 지금 한국당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이나 수도권 규제 찬성하는 
의원들은 총선때 심판해야한다고 의견도 많음) 


# 주변 경쟁국과 경쟁력 문제 
    일본이나 중국등 경쟁국들과 달리 
    대규모 특혜가 불가능 



YTN뉴스 

다들 알다시피 당시 과천 디즈니랜드와 
유치하던 지역이 중국 상하이였음 
물론 유치에 성공해 상하이로 넘어갔는데 
이게 인구빨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론 중국 중앙정부나 상하이가 
제시한 조건이 노무나도 매력적이였음 



기사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4&aid=0003673791

무려 부지를 99년간 무상임대에 
도로나 지하철 인프라 다 깔아주고 
국영기업이 나서서 57% 지분투자까지 해줌
이는 중국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도 마찬가지임 
파격적인 부지 부상임대에 지분투자 
인프라까지 다 만들어준다고 함 

만약 일게이들이 사업자라면 
어디다 지으려고 하겠음?
과천 VS 상하이 중에서?
(물론 난 갠적으로 과천임 ㅋㅋ
짱깨는 믿을 바가 못됨 
99년 무상임대해도 언제 뒤집고 
통수 칠지 모르는 민족이라) 


 



다들 알다시피 일본은 민주주의 체제하 
의원내각제 국가지만 
자유민주당이 거의 독주하는 
장기집권 체제였고 
(물론 2009-2012년 일본 최대 흑역사인 
일본 민주당이 정권교체했지만 
자폭해서 무너졌고) 
중국은 알다시피 일당독재국가임 
뭐 싱가포르만 해도 현 집권여당이 
장기집권하는 체제고 
그러다보니 대규모 특혜가 가능함 
그리고 오래 해먹다보니 
사업을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데 




다들 알다시피 한국은 1987년 이후로 
10년 주기로 우파와 좌파가 번갈아집권하고 
특히 같은편이라도 정파에 따라 갈림 
그러다보니 소위 정책 연속성이 떨어지는데 
무조건 전 정권 정책은 뒤엎고 쑤셔대는 경향이 있음 


 


채널 A뉴스 

당장 떠올려봐 이명박 정부때 행한 
4대강이나 제2롯데월드 정권바뀔때마다 
얼마나 쑤셔댐? 감사원 감사에 검찰수사에 
국세청 세무조사에 국회 국정감사까지 
중앙정부가 그런게 아니라 지방정부도 그럼 
당장 오세훈 서울시장때 행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나 세빛섬 
박원순 체제 들어서고 어떻게 했음? 
사소한 부분까지 트집잡고 얼마나 쑤셔댐? 


 



당장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산업육성을 위해 
추진했던 CJ가 추진한 K컬처밸리 사업만 해도 
무슨 최순실이니 뭐니 감사청구한다 뭐한다 
난리치고 이러고들 앉아있는데 
일본이나 중국처럼 특혜를 줘도 대규모 사업을 한다? 
아마 그렇게 일처리한 공무원들 대부분 
정권 바뀌고나서 조사받고 고초를 겪을 확률이 518%임 


 



또 이러면 뭐 일당독재하자는거냐
(그런 난독증 있는 게이는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의견을 개진하는 극소수도 있을텐데 ㄴㄴ 
적어도 대규모 국책이나 건설사업 등과 
관련된 부분은 정책의 연속성을 생각해야한단거지 
지금 문재앙 정부처럼 이명박, 박근혜 정부때 
사업이라면 사소한 영수증 하나
트집잡고 물어뜯을게 아니란 소리임 
(하지만 지금 문재앙 정부가 추진중인 
대규모 사업은 돌아가는 꼬라지를 봐선 
대규모로 정리하긴 해야함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고) 


# 이미 세계적인 규모의 
   에버랜드 VS 롯데월드가 건재 
  
 다만 신세계등은 이들을  
    대체하려고 발악하고 있음 


 



뭐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미 한국의 수도권엔 
과천 디즈니랜드나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추진될 당시 이미 세계적인 규모의 테마파크 
에버랜드나 롯데월드가 건재하고 있는 상황임 

한때 세계 10위권을 넘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밀려나고 있긴하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테마파크하면 
롯데월드 아님 에버랜드임 

그렇다면 과연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들어온다고 한국인들이 몰려갈까
그게 장담하기가 힘듬
하지만 여기엔 반론도 있음 
이미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는 
내수시장용에 불과하고 식상한 컨텐츠다 
다국적 테마파크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의견 또한 강함 



신세계 화성 국제테마파크 조감도 

그렇기때문에 신세계 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화성 국제테마파크 (가칭)을 강력히 
추진하는 것도 더이상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는 더이상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컨텐츠가 아니다 
테마파크만 가지고선 생존이 힘들다 이런 
판단을 내리고 뛰어드는거임 
이 문제를 별도 정보글에서 다루기로함 




이상으로 오늘 정보글을 마치겠음 
다음 정보글은 왜 신세계 그룹이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포기한 화성에서 
국제테마파크를 짓는지 다루기로함 

오늘도 역시나 긴 글읽느라 게이들 고생많았음 
다음 정보글로 찾아온다이기 


https://www.ilbe.com/view/11192187751
직전 정보글 : 한국은행들의 광고전쟁 


7줄 요약 

1 과천 디즈니랜드나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
2 한때 유력했지만 모두 무산됨 
3 부지확보나 보상문제,  강력한 수도권 규제 
4 경쟁국과 달리 파격적인 특혜가 불가능 
5 이미 세계적인 테마파크가 2개나 버티고 있는 점 
6 이러한 점등이 원인이 되어 결국 흐지부지 
7 다만 신세계는 현재 화성 국제테마파크에 올인중임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08.19 12:59